해운업 침체에 중형선사 매각 '빨간불'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2023.10.13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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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6000TEU급 누리호1만6000TEU급 누리호


국적 선사인 HMM 인수전이 한창인 가운데, 중형 해운사의 매각 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중형 해운사의 경우 매각 작업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데, 당분간 인수자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재 M&A 시장에는 대형 선사인 HMM과 현대LNG해운·SK해운 탱커선사업부·폴라리스쉬핑 등 다수의 중형 해운사가 잠재 매물로 나와 있다.



현대LNG해운은 국내 최대 LNG 수송 선사로 HMM LNG 운송사업부가 전신이다. 현대상선 시절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2014년 LNG 관련 사업부를 약 5000억원에 IMM컨소시엄에 매각했다. SK해운은 초대형 원유운반선 30척을 가지고 있는 국내 1위 탱커선 사업자다. SK그룹은 2018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 SK해운을 내놨고,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는 1조5000억원을 들여 SK해운 최대주주에 올랐다. 한앤컴퍼니는 에이치라인해운도 보유하고 있다. 폴라리스쉬핑은 매출 기준 국내 10위권 해운사로 초대형 광탄석 운반선(VLOC)시장 국내 1위, 글로벌 4위 기업이다.

이들은 모두 원자재를 나르는 벌크선사다. 벌크선의 운임을 수치화한 BDI(발틱운임지수)는 9월 초 1069에서 최근 1900 이상으로 급등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석탄 등 연료와 곡물을 비축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데다 올해 브라질의 곡물 수출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물동량이 증가한 덕분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최근의 급등세는 큰 의미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벌크선사 관계자는 "BDI는 원래 변동이 크다"며 "2021년처럼 BDI가 5000이 넘거나 하지 않는 이상 벌크선사의 이익이 갑자기 커지긴 어렵다"고 말했다. BDI지수 상승세가 매각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 지표인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최근 전주보다 2.73% 하락한 886.85를 기록하며 업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1년 전보다 53.9% 떨어진 수치다. 컨테이너선은 3분기가 최대 성수기인데 SCFI는 4주 연속 하락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해운업이 침체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해운물류 분석 기관 라이너리티카는 "공급을 즉각 줄이지 않으면 2016년 수준으로 운임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2016년은 해운업계의 치킨게임으로 SCFI가 600선까지 밀리고, 수익을 내지 못한 한진해운 등 전 세계 많은 선사가 파산한 시점이다. 중형 선사들도 이때를 버티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중형 선사의 인수자를 찾는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HMM의 경우 국내 최대 해운선사라는 상징성과 함께 현금 보유량도 많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수 후보자들이 나타났지만 중형 해운사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무엇보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중형 벌크선사를 인수할만한 해운사는 HMM만 남았는데 정작 HMM이 매각대상이다. HMM은 지난해 컨테이너선 비중이 93%인 매출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벌크선을 55척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새 주인을 찾은 뒤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다른 업종의 후보자들도 HMM의 매각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 관계자는 "해운업 특성상 해외 매각이 쉽지 않은데 해운 업황마저 좋지 않아 제대로 된 인수자를 찾기 어려워졌다"며 "금리도 높아 당분간 중형 선사의 매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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