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이심'·'오심'보단 '민심'[우보세]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23.10.1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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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투표가 시작된 11일 오전 서울 강서구 양천초등학교에 마련된 가양1동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투표가 시작된 11일 오전 서울 강서구 양천초등학교에 마련된 가양1동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태우 전 구청장의 대법원 형 확정에 따른 피선거권 상실로 치러졌다. 서울의 한 기초단체장을 뽑는 선거였지만 대통령과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만큼 뜨거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선거로 여겨지면서 거대 양당의 정치 거물들이 화력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여야 후보들도 '윤심(尹心)'과 '오심(吳心)', 이심(李心)' 등을 전면에 내걸고 뜨거운 마케팅 경쟁을 벌였다. 국민의힘 후보였던 김 전 구청장은 강서구 유권자들에게 보낸 선거 공보물에 '집권 여당의 힘 있는 구청장'이라는 문구를 강조했다. 지역 개발을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같은 당인 '여당 실세 구청장'이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김 후보가 '대통령과 핫라인이 있는 후보'라며 치켜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경찰청 차장을 지낸 그를 전략 공천했다. 또 선거운동 기간 내내 '정권 심판'을 역설했다. 단식 후유증으로 입원치료를 하던 이재명 대표도 퇴원해 집으로 가던 중 강서구청장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약 6분간의 연설로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강서구청장 후보(왼쪽)와 김태우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가 지난 8일 오후 각각 서울 강서구 등촌사거리와 남부시장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진교훈 더불어민주당 강서구청장 후보(왼쪽)와 김태우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가 지난 8일 오후 각각 서울 강서구 등촌사거리와 남부시장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청장 선거가 지역 일꾼을 뽑는 동네잔치로 치러지지 못하고 사실상 중앙정치의 축소판이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나라 30년 지방자치의 현실은 이처럼 바뀌지 않았다. 지역의 자치와 발전, 주민 복지를 책임지는 유능한 리더를 가려내는 선거가 실종되면서다.

선거 행태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의 위상은 많이 올라갔다. 규모가 큰 기초자치단체의 장이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과 예산권은 지방분권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생각보다 막강해졌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서울 구청장 중 국회의원 출신도 다수였던 이유다. 정문헌 종로구청장과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 출신 한 구청장은 "특별시나 광역시의 구청장은 일할 수 있는 권한이 많다"며 "조 단위 예산을 배정하는 것보다 억 단위 예산을 실제 집행하는 게 큰 권한"이라고 말했다.

기초자치단체장을 발판으로 중앙정치에 재진입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서울시 노원구청장을 지냈고, 조은의 국민의힘 의원도 직전까지 서울시 서초구청장직을 수행했다. 지역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대규모 조직을 이끌면서 쌓은 행정 경험을 인정받은 것이다.

중앙정치권의 관심이 기초자치단체장에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지역의 삶이 '중앙정치'보다 앞설 수 있도록 채찍질 하는 것은 지역 주민의 몫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홍보 포스터에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한 표를 심는 날'이라고 적혀있다. 구민들의 소중한 한 표를 받은 새 강서구청장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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