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훈 변호사](https://orgthumb.mt.co.kr/06/2023/10/2023100913171898542_1.jpg)
항저우에 있던 권순우는 자필 사과문을 써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삼레즈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지만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권순우가 부끄럽다"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현존하는 테니스의 신'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종종 경기 도중 라켓을 부수기도 하는데 게임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고의로 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올해 윔블던 결승에서도 라켓을 부쉈다). 얼마 전 열린 US오픈에서도 여자 랭킹 세계 1위 아리나 사바렌카(벨라루스)가 결승전에서 패배한 다음 자신의 라켓을 부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물론 그녀가 울면서도 꿋꿋하게 우승자를 축하해줬고 시상식이 끝난 뒤 홀로 라커룸에서 자신의 라켓을 부순 점은 권순우와 다르다.
상대 선수나 심판과의 악수를 거부하는 일은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게다가 이번 경기에서 권순우는 충분히 억울한 일을 당했다. 상대 선수는 1세트 후 화장실에 가서 10분 동안 돌아오지 않아 규정을 위반했으며 경우에 맞지 않는 메디컬 타임 요청으로 비신사적 행동을 먼저 저질렀다. 심판 역시 이에 대해 지적하고 페널티를 줬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권순우 선수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사정을 무시한 채 왜 이렇게 권순우에 대한 비난이 거센가. 한 가지 답은 한국인들 사이에 만연한 스포츠 국가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 스포츠평론가는 피겨스케이팅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김연아에 대한 "우리 연아" "대한민국의 딸"이라는 계면쩍은 호명에 대해 우리들의 내면에 새겨진 국가주의를 지적했다. 바로 그 김연아의 정확히 반대편에 겨우 2회전에서 탈락한 후 라켓을 부순 권순우가 자리한다. 국제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의 경기결과에 지나친 자랑스러움이나 과도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들은 이제 자제해야 한다. 항저우에서 라켓을 부순 권순우는 권순우의 일을 한 것이고 우리는 서울과 완주, 안동과 양구에서 우리의 테니스를 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