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쓰레기장과 다름 없던, 허물어져가던 빈집에서 지내던 강아지 '이쁜이'. 버려지고 길에서 헤맸고 교통사고를 당했고 앞다릴 다쳤다. 다치게 한 이는 현장을 떠났다. 사람에 대해 부서져본 기억만 가득할 때, 혜민씨가 알려주었다. 다정한 이도 있다는 것을./사진=혜민씨 제공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짙은 밤색 털, 축 쳐진 귀, 까만 입, 어쩐지 꾀죄죄한 강아지가 길을 헤매고 있었다. 모두가 어딘가 정해놓고 향하던 그 거리에서, 이쁜이만 모든 방향으로 걸었다. 게다가 그는 앞다리를 쩔룩거렸다. 그때였다.
앞다릴 절룩대며 차도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강아지 이쁜이. 차를 타고 가다 혜민씨는 이쁜이를 우연히 봤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모른척하는 것과, 내려서 바라보는 것. 혜민씨는 후자를 택했고, 그 덕분에 이쁜이 삶도 많은 게 달라졌다./사진=혜민씨 제공
"선생님, 저는 저 강아지가 그냥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 녀석 잡으면 저는 10만원 받긴 하지만요. 바로 보호소 가거든요. 장애가 있으니 입양은 힘들 거고요. 그럼 일주일만에 안락사 되잖아요."
쓰레기장에 숨어 살던 강아지…매일 만나러 갔다
더는 굶주린 채 여기저기 헤매지 않아도 된다고, 매일 찾아가 챙겨주었던 식사./사진=혜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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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 밥을 주시러 갔고요. 이제 강아지는, 더는 혼자가 아니게 된 거지요. 어떠셨는지요.
혜민 : 다 무너져가는 집에 숨어 살더라고요. 밥을 챙겨주러 매일 갔어요. 아침에 출근할 때 들르고, 퇴근할 때도 가서 만났고요.
형도 : 그리 하시기 힘들단 걸 너무 잘 아는데요.
혜민 : 실은 18살인 노견이 신부전과 치매로 아프기도 할 때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강아지를 돌보러 다니니, 부모님이 "너 미쳤구나. 네 아이나 잘 돌봐"라고 하셨지요. 많이 대립하고 또 힘들더라고요. 공황 장애까지 왔었어요. 제 인생은 없다시피 했지요.
처음엔 손끝만 스쳐도 벌벌 떨었던 이쁜이가 마음을 연다. 사람에 대한 나쁜 기억이 가득했을텐데도, 다시 마음을 열어보는 존재. 부지런한 사랑을 준 덕분에, 믿어보고 싶은 사람이 다시 생겨서./사진=혜민씨 제공
혜민 : 그 날짜가 다가오는 거예요.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했지요.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요. 동물농장도 제보하고, 유튜브에도 올렸어요. 어떤 분이 보시고 알리셨고요. 리버스란 단체에서 구조해준다고 하셨지요. 이쁜이가 안타깝다고 무료로 해주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동네 주민 분이 말씀하시길, 한 마리가 더 있다는 거예요.
보리라 불리는 백구였다. 동네 아저씨가 잡아먹으려 키우던 개였단다. 보리를 개장수에게 보내는 날이 됐다. 목줄을 붙들었는데, 가까스로 탈출했다. 이쁜이와 보리는 부부였다. 둘은 서로 의지하며 위태롭게 길에서 살고 있었다. 그걸 알고 안타깝게 여기던 동네 주민이, 이쁜이와 보리 둘다 구해달라고 청한 거였다.
교통사고 내고 도망간 운전자…오래돼 다리뼈가 굳어 있었다
이쁜이와 보리를 구조하기 위해 나선,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활동가 분들./사진=혜민씨 제공
형도 : 가장 시급한 건, 절룩이던 이쁜이 다리였겠지요. 어떤 상태였나요.
혜민 : 엑스레이를 찍어봤어요. 아이가 네 살에서 다섯 살 됐는데, 한 살 정도에 교통사고가 났대요. 이미 오래돼 뼈가 굳어 있었고요. 가죽이 붙어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라고 했어요. 근육도 다 소실됐고요.
개들의 늘 온몸으로 말한다. 당신이 와줘서 너무 좋다고, 기쁘다고, 기다렸다고./사진=혜민씨 제공
혜민 : 이쁜이를 친 운전자가 그냥 간 거예요. 그때 제대로 치료만 됐어도 다리가 이렇진 않았을 거예요. 속상했지요. 다릴 자르면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어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상처 치료만 해주었지요.
심장사상충도 있어서 치료하고, 중성화 수술까지 했다. 치료비는 유튜브를 통해 십시일반 후원을 받았다. 수술 전날엔 개들을 목욕시켰다. 씻기는 데에 샴푸 한 통을 다 썼단다. 털도 덥수룩해서 미용해주었다.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 직접 가위로 잘라주었다. 좋은 소고기도 사서 먹였다. 정성이었다.
보호해주는 유일한 존재가,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 주인이었던 보리. 그런 보리가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온기를 나눈다. 기댈 곳을 찾고 고단함을 잠시 잊는다./사진=혜민씨 제공
혜민 : 마음을 열더라고요. 보리는 목줄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나 죽었다 하고 배 깔고 얼어버려요. 아무리 밥을 챙겨줘도 가까이 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병원에 두 번째 간 날, "보리야"했더니 배 뒤집고 반기더라고요. 그 모습에 눈물이 났지요.
손 닿으면 벌벌 떨던 이쁜이도, 마음을 열었다
앞발을 치료한 뒤 환히 웃고 있는 이쁜이./사진=혜민씨 제공
형도 : 그런 모습이 더 맘 아픈 거지요. 상처가 그만큼 크단 거니까요.
혜민 : 말 못하는 동물이잖아요. 긍휼한 마음이 많았어요. 사람은 뭔가 선택해서 할 수 있지만, 이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배를 보여준 보리. 가장 약한 부분을 보여주는 마음, 당신은 그만큼 믿는다는 뜻일게다. /사진=혜민씨 제공
혜민 : 인간이 보호해야 하는 거지요. 몸이 힘든 날은 있었지만, 제가 아니면 도움을 못 준단 생각에 움직이게 되었어요. 저를 너무 기다려주고, 가면 엄청 반기거든요. 마음이 찢어지는 거지요.
이쁜이와 혜민씨의 투샷./사진=혜민씨 제공
혜민 : 3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어요. 이틀만에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쁜이가, 안 그러던 애가, 울다시피 하면서 제게 달려오는 거예요. "많이 기다렸어, 너무 반가워" 그렇게 말하듯이요. 너무 감동을 받았지요.
형도 : 그리 상처 받았는데도, 다시 애정을 주는 거고요.
혜민 : 가장 의지하던 주인에 의해 죽임을 당할뻔 했잖아요. 마음을 안 열거나,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랑을 막 줬더니, 그 아이들이 고마워하는 게 느껴진 거지요. 말이 안 통해도 진심은 전해지는구나, 위로를 많이 받았지요.
※ 이쁜이와 보리를, 가족으로 맞아주세요
차 뒷좌석에서 쉬고 있는 이쁜이와 보리./사진=혜민씨 제공
혜민씨는 요즘도 아침, 저녁으로 매일 이쁜이와 보리를 만나러 갑니다. 인근 가게 사장님께서 사료와 물을 챙겨주시고 있어요.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상하다고, 그는 인터뷰 중 자주 울먹였습니다.
날이 부쩍 추워지고 있어요. 빈집에서 지내는 두 개에게 혹독한 겨울이 옵니다. 하루빨리 가족을 찾는 게 필요합니다.
이쁜이와 보리는 여전히 빈집에 산다. 입양할 여력이 안 되는 혜민씨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돌보고 있다. 가까이 갈 때면 두 녀석이 이리 달려와 반겨준다. 날이 추워진다. 이들에겐 오래 버틸 힘이 없다. 가족이 필요하다./사진=혜민씨 제공
돌보고 치료해준 이는 있으나, 아직 가족이 되어줄 분들이 필요해요. 이쁜이와 보리를 가족으로 맞아주실 분은, 이메일([email protected])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러블리냥멍' 유튜브에 댓글을 달아주셔도 됩니다.
글을 쓸 때 늘 마무리를 가장 고민하고는 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기 어려운 건, 아직 가족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요.
그러니, 이 이야기의 결말을 여러분이 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피엔딩'으로요.
풀숲을 헤치고 뛰어나오는 사랑스러운 두 존재들. 이쁜이와 보리. 간절히 바라본다. 다가올 겨울이 춥지 않기를, 봄엔 따뜻하기를, 지금까지의 삶이 다는 아니란 걸 알려줄, 다정한 가족들이 생기기를./사진=혜민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