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사진=김화진
중세도시 탈린은 그러나 첨단 디지털 산업도시다. 2007년에 글로벌 디지털 도시 톱10에 들었고 유럽연합(EU)의 IT(정보기술) 기관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사이버방위센터가 있다. 스카이프의 발상지인데 유럽에서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가 가장 많은 도시다. 스카이프 창업자이자 억만장자의 이름도 얀 탈린이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찾아지지 않는다. 국토의 48%가 삼림지대인 에스토니아의 주산업은 농업, 건설, 전력이다. 1인당 GDP는 4만6000달러로 러시아의 3만5000달러보다 높다. 우리나라는 5만6000달러.
발트3국은 공통점이 많지만 맨 위의 에스토니아를 여행해 보면 사람들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북유럽의 스웨덴, 핀란드 계열이다. 다른 두 나라는 러시아, 동유럽 계열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어도 아주 잘한다. 경제성장이 빨라서 '발틱 타이거'라고 불린다. 스위스와 크기가 거의 같은 에스토니아는 약 2000개의 섬도 가지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3대 도시이자 최동단인 나르바는 162m 길이의 작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의 이반고로드와 연결된다. 이반고로드는 원래 에스토니아 영토였는데 1945년에 소련이 떼어간 곳이다. 1492년에 지어진 성채가 자리하고 있다. 2차 대전 때 나르바는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구소련은 원주민들을 귀향하지 못하게 하고 러시아인들만 이주를 허용해 러시아계 비중이 높아졌다. 에스토니아 독립 후에도 러시아계 주민들은 별 불편 없이 살아왔다. 대다수가 EU 시민의 지위에 만족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다들 마음이 불편해지고 이반고로드와의 왕래도 줄었다고 한다. 이름이 '우정의 다리'인데 이제 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에스토니아는 2차 대전 동안 처음에는 소련, 다음에는 독일, 다시 소련의 점령을 당했다. 그래서 청년들이 양쪽으로 징집되어 전장으로 나갔고 전쟁 막바지에는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싸우는 경우도 발생했다. 에스토니아 영화 '1944 Brothers Enemies'(2015)가 그 소재다. 전장에서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면 조용히 헤어진다. 이 영화는 러시아에서는 상영금지되었는데 에스토니아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IMDb에서도 평점이 7.5로 상당히 높다. 에스토니아 1944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