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의 날’ 아빠 입은 윤계상과 천재 소녀의 공조

머니투데이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0.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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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소재와 달리 가족의 의미 깨닫게 해주는 작품

사진=KT 스튜디오 지니사진=KT 스튜디오 지니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극본 김제영, 연출 박유영)은 제목이 선사하는 기대감을 보기 좋게 깨버린다. ‘유괴’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를 행한 범인과 그를 쫓는 형사 사이에서 펼쳐지는 두뇌 싸움 등이 담긴 범죄스릴러물 정도가 짐작되지만, 이야기의 시작부터 예상은 빗나간다. 오히려 유괴범(이마저도 실상은 유괴하지 않은)과 유괴된 소녀 사이의 역전된 관계성이, 절대 생길 수 없고, 생길 것 같지 않은 둘 사이의 끈끈함이 초반부터 시청자들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주인공 김명준(윤계상)에겐 소아암에 걸린 어린 딸 희애가 있다. 언제나 딸의 병원비가 고민인 그에게 전 재산을 들고 도망갔던 전처 서혜은(김신록)이 나타나 엉뚱한 제안을 한다. 큰 병원장 딸인 최로희(유나)를 납치하자는 것. 여유가 없던 김명준은 서혜은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마음 약한 초짜 유괴범은 범행 실행을 앞두고 몇 번이고 망설이는데, 그 차에 한 아이가 김명준의 차에 뛰어든다. 유괴 대상인 최로희다. 김명준은 쓰러진 최로희를 제집으로 데리고 온다.



사진=KT 스튜디오 지니사진=KT 스튜디오 지니
얼떨결에 유괴에 성공하지만, 아이의 부모와는 연락도 닿지 않고, 깨어난 아이는 기억을 잃자 김명준은 곤란해한다. 그는 최로희에게 자신이 아빠라고 둘러대지만, 기억만 잃었을 뿐 천재적인 아이는 김명준의 말을 완벽하게 믿지 않는다.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로 “진짜 아빠 맞아?”라며 묻는 등 시험하는 모양새다.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요구할 예정이었던 시작과는 달리 전세가 역전된 둘의 모습은 분명 우리가 아는 ‘유괴’와는 다르다.



‘유괴의 날’이 더욱 편하게 시청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은 직후에 펼쳐진다. 김명준은 최로희의 부모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하지만, 전화기는 꺼져있다. 이에 김명준은 최로희를 집으로 돌려 보낼 준비를 한다. 그 사이, 최로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유괴 당할 위험에 놓인다. 제 집에서 최로희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김명준은 온 동네를 뒤지며 애타게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기억을 잃은 최로희에게 제 딸의 이름을 가르쳐 줬던 김명준은 처음과 달리 “최로희”라며 진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결국 김명준은 제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한다. 돈이 될 ‘유괴한 대상’이 아닌 잃어버린 제 딸을 찾아 헤매는 아빠를 보는 듯 애타게 찾는 그의 모습은 눈물샘을 자극한다. 결국 김명준에게 있어 아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 당연히 지켜야 할 대상이었을 뿐이다.

사진=KT 스튜디오 지니사진=KT 스튜디오 지니
최로희는 김명준이 제 진짜 이름을 부르는 순간 기억의 일부분이 돌아왔다고 말한다. 결국 김명준은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고, 둘은 파출소로 향한다. 하지만 파출소로 들어가려던 최로희는 제 집 앞에서 경광등이 달린 차를 봤던 기억을 떠올린다. 앞서 최로희가 김명준의 차에 뛰어든 그 날, 최로희 부모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것. 당장 최로희에게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오히려 저를 유괴했다지만 지금껏 저를 돌보고 지켜준 김명준뿐. 결국 최로희는 김명준을 찾아가 그의 손을 잡는다. “유괴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딸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11살 소녀를 납치하는 초짜 유괴범 김명준 역은 배우 윤계상이 연기한다.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익숙한 보통 남자 캐릭터부터 예민한 인상의 로펌 대표나 강인한 직업 군인, 똑똑한 변호사 역할까지 아우르며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든 윤계상은 영화 ‘범죄도시’(2017)에서 전사, 서사조차 없는 절대 악 장첸으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유괴의 날’에서는 어설프게 유괴를 계획하다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살해 용의자로 쫓기는 인물로 최로희 역의 유나와 따뜻한 티키타카를 보여준다. 김명준의 차에 치어 기억을 잃은 11살 천재 소녀 최로희 역은 500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 된 배우 유나가 맡았다. 최로희는 아이답지 않게 시니컬하고 기억을 잃었어도 비상한 두뇌는 그대로인 인물로 자신을 아빠라고 주장하는 김명준이 의심스럽지만 기묘한 유대감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

사진=KT 스튜디오 지니사진=KT 스튜디오 지니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한 생동감은 물론 빠른 전개로 속도감을 더해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에 원작에는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 알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알 수 없는 이야기 전개를 이어간다. 확실한 건 ‘어설픈 유괴범’과 ‘천재소녀’의 만남이라는 것. 드라마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뿐이다.

유괴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했지만, “최대한 피하려 했다”는 연출자의 말처럼, 로희와 명준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이야기“로 끝맺을 수 있을까. 남은 여섯 개의 ‘유괴의 날’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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