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맛의 '데블스 플랜', 아쉬운 킹 슬레이어의 부재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3.10.0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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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정종연 PD가 기획한 '더 지니어스' 시리즈는 '두뇌 서바이벌 예능'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 4시즌으로 끝난 '더 지니어스'가 끝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은 후속작을 기다렸다. '소사이어티 게임', '대탈출', '여고추리반'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한 정종연 PD는 드디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블스 플랜'을 통해 '더 지니어스'의 맥을 이었다. "이런 맛은 제일 잘 안다"는 정종연 PD의 말처럼 '데블스 플랜'은 익숙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맛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다만, 판을 뒤짚어버리는 킹 슬레이어의 부재는 아쉽다.



'데블스 플랜'은 변호사, 의사, 과학 유튜버, 프로 게이머, 배우 등 다양한 직업군이 모인 12인의 플레이어가 7일간 합숙하며 최고의 브레인을 가리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다. 정종연 PD가 TEO 이적 이후 처음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며 유튜버 곽준빈, 궤도, 방송인 박경림, 세븐틴 승관, 배우 이시원, 하석진, 프로바둑기사 조연우, 프로게이머 출신 포커 플레이어 기욤 패트리 등 다양한 분야의 '뇌섹남녀'들이 참가했다. 또한 일반인 오디션을 통해 뽑인 김동재, 서유민 역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더 지니어스' 시리즈의 정신적 후속작이라는 평을 받는 '데블스 플랜'은 여러모로 '더 지니어스'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큰 특징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주최자가 게임을 진행하고, 딜러들이 이를 보조한다는 점이다. 특히 최병윤·윤철현, 두 남자 딜러는 '더 지니어스' 시리즈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최병윤 딜러의 경우 '더 지니어스'에서 '데블스 플랜'으로 넘어오며 보조 딜러에서 메인 딜러로 '승진'을 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중간중간 게임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배한성 성우 역시 '더 지니어스'와 '데블스 플랜'에 모두 참여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자연스레 '더 지니어스'와 '데블스 플랜'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그러나 '더 지니어스'와의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합숙이다. '더 지니어스'는 합숙이 진행되지 않아 방송 밖에서 사적으로 이루어진 연합과 약속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다. 그에 따라 때때로 시청자들이 방송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동맹과 전략이 탄생하기도 했다. '데블스 플랜'은 이러한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합숙을 진행했다. '데블스 플랜'은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어들의 연합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이와 관련한 개연성을 제시했다.

또한, 게임의 진행 과정 역시 다르다. 앞선 '더 지니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두뇌 서바이벌 장르는 한 개의 메인 매치를 통해 탈락 후보를 선정하고 이들이 탈락을 걸고 펼치는 데스 매치로 구성됐다. 그러나 '데블스 플랜'은 하루 한 번 플레이어들이 경쟁하는 메인 매치와, 플레이어들이 협동해야 하는 상금 매치를 배치하면서 계속해서 참가자들 사이의 관계를 붙였다 떼어놓고 있다.


게임 내 화폐인 '피스'의 가치 역시 달라졌다. 앞선 '더 지니어스' 시리즈에서 통용됐던 화폐인 가넷은 단순히 화폐의 가치밖에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참가자들은 최종 상금을 높일지 혹은 현재의 유리한 플레이를 위해 가넷을 소비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넷은 생존 그 자체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더 지니어스2' 임요환은 가넷이 0개인 상태로 꾸준히 생존하기도 했다. 그러나 '데블스 플랜'에서 피스는 화폐를 넘어 목숨줄로 작용한다. 피스가 0개가 된다면 곧바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스 하나하나의 가치는 '더 지니어스' 시리즈의 가넷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중반부 이후에는 피스에 숨겨진 힌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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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게임의 승패로 탈락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피스의 보유 여부로 생존이 결정되기 때문에 독특한 전략이 나오기도 한다. 유튜버 궤도가 주장하는 공리주의다. 궤도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적은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들이 최대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서로를 견제하고 합종연횡을 통해 누군가를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 목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목적이다. 다만, 최종 상금을 누적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점에서는 마냥 '이상론'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물론,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연합에 속해있지만 '떨어질 사람은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곽준빈, 궤도 연합에 강자라는 프레이밍이 씌워진 김동재, 이시원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게임에서 이를 끊어내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게임이 시작하기만 하면 전략의 중심이 되는 궤도의 모습은 '더 지니어스' 시즌1의 차민수를 연상케 한다. '더 지니어스'에서는 성규가 데스매치에서 차민수를 떨어뜨리며 참가자들이 개인플레이에 집중하게 만들었지만, '데블스 플랜'에서는 '킹 슬레이어'가 될 참가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의존하는 플레이로는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하석진이 이에 대척점에 있지만, 그 역시도 메인 매치에서는 다수 연합에 힘을 못쓰는 모양새다.

다수 연합이 최소한의 탈락자를 발생시키는 사이 어느새 '데블스 플랜'은 중반부를 넘어 종반부에 접어들었다. 준결승과 결승, 두 개의 매치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남은 플레이어는 무려 8명이다. 9화 마지막에는 하석진과 이시원이 숨겨진 비밀을 풀어내며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남은 3화에서 궤도의 공리주의가 끝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혹은 하석진과 이시원의 연합이 이를 깨뜨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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