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속상해요.(씁쓸한 미소) 그래서 ‘보스톤 1947’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요. 여러 우여곡절 끝에 오래 기다리고 힘들게 촬영을 했기에 결과가 너무 아쉬워요. 저와 주지훈, 김성훈 감독이 뭉쳤는데 이런 성적을 받은 건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답노트를 썼는데 그 이유를 찾아나가야죠. 흥행은 안됐지만 ‘비공식작전’이 좋은 작품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있어요. 영화적 재미가 문제인 거죠. 그래서 관객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고 봐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요. ‘보스톤 1947’이 잘돼 그 아품이 씻겨내려 갔으면 좋겠어요.”

“군대에 있을 때 ‘쉬리’가 개봉했는데 ‘엄청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나왔다’는 소문을 들어 정말 궁금했어요. 휴가 때 나와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봤는데 엄청 나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이런 할리우드 스타일의 블록버스터가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열심히 오디션 보고 다닐 때 강남의 한 식당에서 감독님이 ‘태극기 휘날리며’ 연출팀과 토론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는데 정말 부럽고 ‘나도 저 판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후 김용화 감독님 소개로 처음 만났어요. 작품을 함께 하자는 이야기만 나누고 연이 닿지 않다가 지난 2018년 ‘보스톤 1947’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죠. 준비과정은 다른 일반 영화 출연과는 달랐어요. 학교 교수님을 모시고 촬영을 준비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조교의 입장에서 도움을 드렸던 것 같아요.”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하정우에게 큰 부담이었다. 특히나 손기정은 교과서에 나오는 ‘민족의 영웅’이기에 겸허한 자세로 자료를 조사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손기정에게 감독의 자리에서 후배들을 보스턴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시키는 건 불가능한 미션을 풀어나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촉망받는 후배 서윤복(임시완)을 독려해 마라톤 훈련을 시키고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미군정 시절이었기에 불가능했던 태극기를 유니폼에 달게 하는 숨가쁜 과정은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손기정의 이런 드라마틱한 여정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감동을 선사한다.
”부담이 컸죠. 내가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고민이 됐어요. 후손들이 보고 계시니까요. 말투 하나 의상 하나 모두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발품을 팔아 조사하고 공부했어요. 어떻게 연기를 할까 고민했을 때 우리 큰할아버지가 생각이 났어요. 손기정 선생님이 이북 출신인데 우리 친가도 그래요. 큰할아버지의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어요. 성격이 굉장히 세셨는데 좋고 싫음이 정말 분명하셨죠.. 다혈질이시고요. (웃음) 보스턴 마라톤대회서 태극기를 달게 해주기 위해 연설하는 장면은 제가 가장 공들여 준비한 클라이맥스였어요. 좌절의 시절을 보내다 서윤복에게 유니폼에 태극기를 달아주고 싶어 달려왔던 손기정 선생님의 열정이 담긴 장면이어서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했어요. 결말부 경기 장면 후반부 차에서 내려 직접 움직이며 응원하는 모습은 제가 아이디어를 낸 거였어요. 실제로는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해요. 직접 함께 달리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시완이는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저도 일반적이지는 않죠.(웃음) 야생동물 같은 느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아요. 시완이가 영화를 준비하면서 몸을 만들고 식단 관리를 하며 진정한 마라토너가 돼 가는 과정은 감동적이었어요. 진짜 운동 선수의 마인드를 갖고 있더라고요. 같이 연기하면서 정말 새로웠고 신선한 자극이 됐어요. 계산적이지 않고 덤비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보스톤 1947’ 홍보 활동이 한창인 하정우는 현재 세 번째 연출작 ‘로비’ 촬영 중이다. 열일의 아이콘답게 이미 완성된 영화도 두 편이나 된다. 올해 극장가는 극심한 침체기에 빠져 있다. ‘보스톤 1947’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비싸진 영화관 입장권 가격 때문일까? 팬데믹 시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하정우는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 영화 시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글쎄요. 전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팬데믹이 끝나고 모든 게 정상화된 지 얼마 안 됐어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극장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고 띄어 앉기로 영화를 보고 밤에는 표를 팔 수도 없었어요. 그런 게 1년도 제대로 안됐어요. 과도기인데 아직 절망을 이야기할 시기는 아니라고 봐요. 제 목표는 배우로서 롱런하는 거예요. 일희일비 하고 싶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은 게 제 현재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