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 교수](https://orgthumb.mt.co.kr/06/2023/10/2023100307251229958_1.jpg)
추석이 사라지고 있다. 문화로서 기능을 다했기 때문이다. 추석은 오랫동안 이어온 명절이다. '삼국사기'에 가배라는 이름의 기록이 있다고 하니 그 유래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석은 농업사회를 지켜온 전통이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는 가을걷이철에 즈음하여 농사를 마무리하는 명절이다. 명절은 요즘 말로 하면 축제다.
문화는 일상에서 시작한다. 의식주는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중국에서는 여기에 행(行)을 더 넣는다. 인간은 반드시 어딘가를 향해 '다녀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이다. 행은 교통, 여행, 모빌리티 같은 뜻을 모두 담아낸다. 의식주는 다른 말로 하면 '옷밥집'이다. 축제는 일상과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다. 축제는 일상과 비상(非常)이 결합하는 놀이이자 과정이며 의례다.
추석에 남은 것이라곤 겨우 가족모임뿐이다. 사실 추석은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축제였으니 공업사회로 접어든 근대 이후에는 원래 기능을 모두 상실했다. 근대도시 공동체는 더 이상 추석 같은 축제를 통과의례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0년을 이어온 전통의 힘, 전보다 약해졌다고는 해도 한동안 기세가 꺾이지 않은 농촌의 힘으로 지금까지 유지돼왔다.
젊은이들은 사라진 축제를 즐기지 않는다. 3차산업이 주도권을 장악한 시대를 사는 이들은 새로운 축제를 찾는다. 동시대 도시 공동체를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도시문화는 자연의 섭리보다 인공의 주기를 따른다. 서양에서 들어온 핼러윈 데이를 즐기는 청년세대를 나무랄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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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이제 가족이라는 가치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가족이 모여야 한다면 굳이 음력 팔월대보름일 필요는 없다. 저마다 다른 사정이 있을 테니 언제고 좋은 날을 골라 '가족의 날'이라 정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추석은 이제 문화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문화자원이 됐다. 다보탑이나 에밀레종이 원래 문화기능을 잃어버렸듯 말이다.
그러니 추석을 계속 이어가려면 콘텐츠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다보탑은 증강현실이 되고 에밀레종이 실감형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사례는 모두 문화자원을 콘텐츠로 만든 결과다. 문화콘텐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처럼 다양한 문화자원을 현대화하는 일이다. 추석이라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콘텐츠를 재창조해야 한다. 송편과 색동저고리에 스토리텔링을 덧입혀도 좋다.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전시, 공연, 디지털… 추석이라는 주제를 그럴듯한 장르와 결합한다면 우리 시대의 추석은 '옷밥집'을 넘어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하는 문화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