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추석콘텐츠'가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2023.10.04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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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교수임대근 교수


추석연휴가 끝났다. 다른 때보다 휴일은 길었지만 분위기는 더욱 차분했다. 우리 가족도 처음으로 바깥 식당에 모여 식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민족의 명절'에 고향을 찾느라 귀성길이 좀 막히긴 했지만 떠들썩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추석이 사라지고 있다. 문화로서 기능을 다했기 때문이다. 추석은 오랫동안 이어온 명절이다. '삼국사기'에 가배라는 이름의 기록이 있다고 하니 그 유래는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석은 농업사회를 지켜온 전통이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는 가을걷이철에 즈음하여 농사를 마무리하는 명절이다. 명절은 요즘 말로 하면 축제다.



축제는 인간집단의 문화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계절을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산업을 일구던 조상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때가 되면 축제를 치렀다.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꾸미고 즐기는 일에 몰두했다. 이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존속을 기원했다.

문화는 일상에서 시작한다. 의식주는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중국에서는 여기에 행(行)을 더 넣는다. 인간은 반드시 어딘가를 향해 '다녀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이다. 행은 교통, 여행, 모빌리티 같은 뜻을 모두 담아낸다. 의식주는 다른 말로 하면 '옷밥집'이다. 축제는 일상과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다. 축제는 일상과 비상(非常)이 결합하는 놀이이자 과정이며 의례다.



어렸을 적 추석을 떠올리면 어머니가 손을 잡고 새 옷과 신발을 사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명절엔 말끔한 새 옷으로 단장해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명절이 돼도 옷을 사러 가지 않는다. 이제 옷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추석은 '옷'을 잃어버렸다. 몇 해 전만 해도 추석이 되면 이것저것 재료를 준비해서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곤 했다. 올해 추석에는 그마저 사라졌다. 송편도 동그랑땡도 먹어보지 못한 추석은 아마 올해가 처음인 것 같다. 집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석은 이제 '밥'을 잃어버렸다.

추석에 남은 것이라곤 겨우 가족모임뿐이다. 사실 추석은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축제였으니 공업사회로 접어든 근대 이후에는 원래 기능을 모두 상실했다. 근대도시 공동체는 더 이상 추석 같은 축제를 통과의례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0년을 이어온 전통의 힘, 전보다 약해졌다고는 해도 한동안 기세가 꺾이지 않은 농촌의 힘으로 지금까지 유지돼왔다.

젊은이들은 사라진 축제를 즐기지 않는다. 3차산업이 주도권을 장악한 시대를 사는 이들은 새로운 축제를 찾는다. 동시대 도시 공동체를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도시문화는 자연의 섭리보다 인공의 주기를 따른다. 서양에서 들어온 핼러윈 데이를 즐기는 청년세대를 나무랄 수 없는 까닭이다.


추석은 이제 가족이라는 가치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가족이 모여야 한다면 굳이 음력 팔월대보름일 필요는 없다. 저마다 다른 사정이 있을 테니 언제고 좋은 날을 골라 '가족의 날'이라 정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추석은 이제 문화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문화자원이 됐다. 다보탑이나 에밀레종이 원래 문화기능을 잃어버렸듯 말이다.

그러니 추석을 계속 이어가려면 콘텐츠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다보탑은 증강현실이 되고 에밀레종이 실감형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사례는 모두 문화자원을 콘텐츠로 만든 결과다. 문화콘텐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처럼 다양한 문화자원을 현대화하는 일이다. 추석이라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콘텐츠를 재창조해야 한다. 송편과 색동저고리에 스토리텔링을 덧입혀도 좋다.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전시, 공연, 디지털… 추석이라는 주제를 그럴듯한 장르와 결합한다면 우리 시대의 추석은 '옷밥집'을 넘어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하는 문화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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