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의 말을 믿어라" vs "꾀병임을 의심하라" 병무청 병역판정 의사의 딜레마

병무청 소속으로 병역판정 업무에 종사하는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선 '환자의 증상 호소를 믿으라'는 직업인으로서의 덕목과 '꾀병임을 의심하라'는 임무 사이에서 '직업적 딜레마'에 직면하는 측면도 있는 셈이다. 서울지방병무청 정신건강의학과 병역판정검사 전담의사인 이재훈 전문의는 "다른 과처럼 피검사를 하거나 X레이, CT 등을 찍는게 아니라 힘들어하는 사람의 말, 행동, 보여지는 모습들을 가지고 진단·판단하고 치료하는 분야로 기본적으로 정신과의 가장 큰 원칙은 환자의 보여지는 모습을 믿고, 그 모습을 공감해 줘야한다는 것"이라면서도 "판정 의사로 일하면 '어 이친구가 꾀병으로 속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계속하고 의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이 병역 면탈 관련 범죄 혐의자를 적발해 왔던 핵심 배경으로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의 초동수사가 꼽히곤 한다. 병역판정검사 과정에서 이따금 검증망이 뚫리더라도 병무청이 이를 먼저 바로잡는 일종의 '자정 작용'에도 앞장서곤 했던 셈이다.
살아온 인생과 결이 맞지 않는다면 '의심'…"자기 고통 귀기울여야" 당부도

이런 얽히고 설킨 문제에 대해 이 전문의는 "단순히 앞에서 보여지는 모습 뿐만 아니고 생활기록부나 병원치료기록, 살아온 인생에 대한 정보들을 보고 결이 너무 맞지 않는다면 의도적인 게 있지 않나 보고 제보를 한다"고 했다.
'가짜 정신질환자' 지인 등의 제보 배경도 바로 정신질환이라고 보기엔 걸맞지 않은 활동 등이 배경이 되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는 '자동차 딜러'로 활동하는 사회인들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꾸며내는 방법을 공유한 뒤 진단서를 제출했다가 병무청에 의해 적발됐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 특성과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걸맞지 않아보인다는 점을 병무청이 포착한 결과다.
지능 분야를 제외한 정신건강의학 분야 검사는 병역판정검사 전담의사가 의료기관의 추가 검사 결과 등도 종합해 판정한다. 다만 이 전문의는 "사회적으로 용납받지 못하는 정신적 어려움, '너 스트레스 받아서 무기력하고 다운되는데 다 그래'하는 그런 정신적 어려움을 검사를 통해 알려주고 '한 번 병원에 가서 상의를 받아보자'라고 말하는 게 제 역할이기도 하다"고 했다.
아울러 이 전문의는 "현역 면제가 되든 현역을 가든 혹은 아직 대상자가 아니든 상관없이 자기 고통은 자기가 관심을 가져야 되고 그 고통에는 귀기울여야 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