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說]호감도가 한국의 2배…일본 향한 대만의 짝사랑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3.09.3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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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비밀, 미일과 사랑에 빠진 양안②

편집자주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150조원 규모의 가전시장을 가진 중국은 글로벌 IT시장의 수요 공룡으로 꼽힙니다. 중국 267분의 1 크기인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호령하는 TSMC의 본거지입니다. 미국·유럽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물론 워런 버핏, 팀 쿡 등 굵직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죠. 전 세계의 반도체와 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권을 이끄는 중국·대만의 양안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대만 현지의 생생한 전자·재계 이야기, 오진영 기자가 여러분의 손 안으로 전해 드립니다.

일본과 대만 국기. / 사진 = 야후타이완일본과 대만 국기. / 사진 = 야후타이완


"일본 정부의 반도체 강화 조치를 환영한다. 우리는 일본 반도체와 계속 협력해 나가겠다."

류더인 타이지디엔(TSMC) 회장은 최근 일본향(向) 투자 확대를 묻는 질문에 위와 같이 말했다. 구체적인 투자안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 발언은 TSMC가 일본에 7개의 반도체 팹(생산시설)을 지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더한다. TSMC는 구마모토현 1공장에만 10조원을 쏟아부은 데 이어 수십조원을 더 투입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을 전망이다. 대만·일본 반도체의 밀월관계가 한층 굳건해질 것이라는 평가다.

대만 산업계가 사랑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투자나 협력 1순위는 일본 기업이고, 가전이나 차량, 전자 제품은 '메이드 인 재팬'이 최고로 대접받는다. 연초 일본 원자재업체들의 가격 인상 파동으로 일본산 '가격 쇼크'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여전히 대만에서의 입지는 견고하다. 한국에 호감을 가진 1020세대를 중심으로 삼성·LG가 반격에 나섰지만, 공고한 성벽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다.



혼수도 일제, 반도체 투자처도 일본…대만은 일본을 좋아해
/사진 = 최헌정 디자인기자/사진 = 최헌정 디자인기자
대만에는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지참금을 주는 '핀쥔'이라는 문화가 있다. 보통 붉은 봉투에 담은 현금을 주는데, 가전제품을 주는 경우도 많다. 가장 높게 평가받는 제품은 일제 가전이다. 신뻬이 시의 한 가전 판매 전문점 관계자는 "삼성·LG도 괜찮지만, 그래도 최고는 역시 소니나 파나소닉 등 일본 가전"이라며 "결혼 철엔 가게 매출의 70~80% 이상이 일본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날씨가 덥고 습한 대만의 기후 특성상 필수재로 꼽히는 에어컨이나 냉장고 역시 일본 히타치와 다이킨, 파나소닉이 과점하고 있다. 특히 파나소닉은 지난해 기준 250억 대만달러(한화 약 1조원)의 매출을 대만에서 거뒀는데, 이는 일본(약 3조 3000억원), 중국(약 1조 6000억원)에 이어 3번째다. 본토 일본이나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 비해 2300만명에 불과한 대만인들의 '일제 사랑'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선호도가 높다 보니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는 물론 기업들의 신규 투자처도 대부분 일본이 첫손에 꼽힌다. 대만여론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대만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호감도는 83.9%로, 싱가포르(87.1%)에 이어 모든 국가 중 2번째다. 한국(48.6%)의 2배에 달한다. 까오슝의 제조 기업 관계자는 "일본 기업과 협업하면 직원들도 만족하고, 고객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대만·일본의 관계가 견고하다. 대만 1위 기업 TSMC도 경쟁력이 약한 일본 반도체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구마모토현에 약 9조원을 투입해 1공장을 지은 데 이어 2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의 투입 예상 금액은 10조원 이상으로, 중국 난징은 물론 자국 까오슝에 짓는 팹 건설 금액보다 많다. TSMC가 파운드리를, 일본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맡아 '메가 팹'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외에도 일본향(向) 투자가 잇따른다. 업계에 따르면 대만 2위 파운드리 UMC도 일본 미에현에 웨이퍼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1위 통신업체 청화텔레콤은 최근 일본 내 통신 사업을 확대해 대만 기업 진출을 늘리겠다며 일본 정부로부터 특별 허가를 취득했다. 장웨이리엔 청화텔레콤재팬 사장은 "일본에 진출하는 대만 기업을 위해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굳게 맞잡은 대만·일본의 두 손…우리도 잡을 순 없을까
타이페이의 시내에서 모투이처(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다. 대부분이 야마하 제품이다. / 사진 = 독자제공타이페이의 시내에서 모투이처(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다. 대부분이 야마하 제품이다. / 사진 = 독자제공
국내 가전업계는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젊은층을 공략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가장 좋은 사례가 LG 세탁기다. 시장조사업체 앵글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세탁기 시장의 점유율 1위는 파나소닉이지만, LG 역시 근소한 격차로 추격하고 있다. 우수한 성능과 폼팩터(외형) 외에도, 한국 브랜드가 갖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적극 공략했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TSMC와 일본 기업의 동반자 관계 강화를 염두에 두고 국내 기업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감정, 비용 문제 등으로 국내 기업은 일본 투자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파운드리·팹리스 영역의 경쟁력은 약할지 모르지만, 소부장 부문의 영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당연히 현지 시설 확충이 좋지만, 발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만 주요 반도체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TSMC가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지을 때 일본 정부는 30~40% 수준의 보조금을 약속했으며, 소니·덴소 등 주요 일본 기업도 협동 투자를 약속했다. 이에 반해 국내 업계는 상대적으로 대기업들의 반도체 수요도, 지원도 부족하다. TSMC 외에도 UMC, GUC 등 주요 대만 업체를 국내로 끌어온다면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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