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만료로 사법부 수장 공석 사태가 30년만에 현실화하면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 개최일조차 확정하지 못한 정치권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상대 진영의 인사는 일단 트집 잡고 보는 '낙마정치'와 이에 따른 사법 공백이 결국은 국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민생정치의 중요한 부분인데 당장 표결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미뤄두자는 것은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진녕 법무법인 씨케이 대표변호사도 "입법부가 삼권분립의 한 축이자 헌법기관인 사법부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라며 "국회에 사법 수장 임명동의권을 준 것은 선출직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라는 것인데 표결조차 미루는 것은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법원 수장 자리를 빈자리로 방치한 책임을 국회뿐 아니라 정부에 함께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후보자를 물고 늘어진 민주당 등 야당과 더불어 헌법기관 수장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안이하게 대응한 정부와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정국의 해법은 늘 정부와 여당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좀더 치밀하게 대법원장 임명동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기우는 시나리오도 배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법원장 임명은 국회의 동의가 필수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정국과 맞물려 여야 정치권의 해법 모색이 표류할 경우 사법 공백 사태가 연말연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경우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수행하는 안철상 선임 대법관을 포함해 민유숙 대법관 등 내년 1월 퇴임하는 대법관의 후임 후보자 제청 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내년 초 진행될 법원 정기인사 역시 안갯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국회가 사법을 볼모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일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서는 매년 5만건 가까운 사건을 처리한다. 지난해 대법관 1명이 처리한 사건은 4036건꼴이었다. 2010년 1인당 처리사건이 3000건을 넘어선 지 12년만에 1000건이 더 늘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그만큼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얘기다. 적잖은 경우가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이 큰 사건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사법 공백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국민들이, 그 중에서도 마지막 보루로 법원을 찾은 소수·약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