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을 데리고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는 영화. 메가폰을 잡은 김지운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굵직한 명작들을 다수 배출한 연출자.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밀정'(2016) 등이 있다.
'거미집'이 한국 영화에 대한 헌사, 70년대 영화계를 오마주한 작품인 만큼 김지운 감독은 "존경하는 선배 감독님이 많지만 그중 제가 늘 해외 인터뷰 자리에서도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분이 고(故) 김기영 감독님이시다"라고 짚었다. 그는 "저 또한 장르 감독인데 그런 지점에서 김기영 감독님의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받기도 했고, 감독님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유족분들의 오해를 산 부분이 있었지만 직접 뵙고 이런 존경심과 제 진심을 말씀드려 원만하게 합의가 됐다. '거미집'을 통해 그 시대의 전체적인 느낌들을 말하고 싶었던 제 진심이 잘 전달됐을 거라 생각한다"라고 알렸다.
또한 '거미집'은 컬러와 흑백, 영화 속 영화가 교차되어 역동적으로 휘몰아치는 차별화된 매력이 묘미인 작품. 이에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 같은 실험적인 영화를 젊은 감독들이 해줘야 하는데... 저는 이제 노후를 생각해야 하는 감독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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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그는 "내가 정말 영화 작업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는 건가, 자기 환멸이 느껴지고 이 세상에 대한 환멸과 매체에 대한 환멸이 막 오면서 그 마음을 잃은 건 아닌가 의심이 됐다. 그래서 내가 처음 영화를 사랑했을 때 어떤 질문들을 했던가, 나의 영화에 대한 태도는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 기간 많이 생각한 고민이었다. '거미집'을 만들고 나서 보니, 그간의 나는 정말로 한평생 영화를 사랑했더라.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서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이자 꿈이었고. 다시 한번 꿈을 찾게 된 나처럼, '거미집'을 보신 사람들이 무언가 잃은 걸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진심을 꺼냈다.
김지운 감독은 "실제로 '거미집' 시사회 뒤풀이 때 '좋았던 시절을 반추하는 계기를 줬다'라는 반응의 영화계 관계자분들이 많았다. 불참한 어떤 한 감독은 '거미집'이 정말 좋았다고, 곧장 집에 돌아가서 시나리오를 쓰느라 못 간다는 얘기를 하더라. 우리 영화가 에너지를 놓치고 있던 분들에게 격려와 자극, 위안을 줬다는 지점에서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한테도 그렇고 감독님들에게 힘을 잃지 말라고 '자신이 믿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 이것에 박차를 가하라'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는 그런 영화다"라고 '거미집'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거미집'이 영화 제작 현장을 배경으로 하지만, 모두가 공감할 만한 보편성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신하기도. 그는 "대중이 어떻게 영화를 읽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영화 속 어떤 특수한 상황, 집단, 스토리를 보면서 제 인생 전반의 확장으로 끌어올려 보편적인 이야기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아니면 왜 감옥, 군대, 무인도 등을 배경으로 얘기를 하고 또 거기에 이입이 되겠나. 그렇기에 '거미집'도 영화계에 대해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의 욕망 형태, 이로 인해 때론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을 이야기한다. 이런 보편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라고 얘기했다.
특히나 김지운 감독은 그룹 에프엑스 출신 정수정을 주요 캐릭터인 한유림으로 과감히 캐스팅, 이목을 끌었다. 정수정은 주로 안방극장에서 활약해왔으며 영화는 독립영화 '애비규환'(2020), OTT 넷플릭스 '새콤달콤'(2021) 단 두 편 출연이 전부였다. '거미집'이 정수정의 첫 상업영화 주연작인 셈. 그럼에도 정수정은 '1970년대 충무로의 떠오르는 스타'라는 설정과 딱 맞는 독보적 존재감과 통통 튀는 열연으로 김지운 감독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정수정에 대해 묻는 말에 김지운 감독은 스스로도 "의외의 캐스팅"이라며 신선함을 강조했다. 그는 "제가 캐스팅 고민을 진짜 많이 하는 편인데 이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거미집'으로 다시 한번 절감했다"라며 "제 전작들의 캐스팅을 보면 의외의 캐스팅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장화, 홍련' 계모 역의 염정아 같은. '거미집'으로 말하자면 정수정이고. 내 안에서 생각하면, 나도 뜬금없다 느낀다(웃음). 염정아의 실제 모습은 계모 역할을 할 어떤 느낌도 받을 수가 없으니까. 제가 코미디 하라고 추천할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난 배우이고 게다가 미스코리아 출신이라 당시엔 도시적인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근데 어느 날 사석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이게 뭐야?' 그러는데 순간 긴장하게 만드는 힘이 있더라. 바로 '잘못 봤네' 그랬지만 이걸 잡아내면 뭔가 새로운 계모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라고 섭외 뒷이야기를 풀었다.
이어 그는 "정수정 역시 마찬가지로 작품 얘기를 하다가 캐스팅을 생각한 게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 1시간 동안 이런저런 수다만 떨었지, 영화 이야기는 전혀 안 했다. 배역 얘기도 안 했는데 정수정은 이 작품을 정말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 저도 돌아와 생각해 보니 유림 역할과 비슷한 부분이 떠올랐다. 순간 새침하고 철없는데 러블리한 느낌을 받은 거다. 그래서 정수정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혹시 테스트 삼아 리딩을 해줄 수 있겠냐' 부탁했다. 딕션, 소리가 너무 잘 들리더라. 그러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정이 출연했던 영화 '새콤달콤'도 찾아봤는데 진짜 잘하더라. 개그 센스가 있다 싶었고, 이것도 (캐스팅에) 영향을 줬던 것 같다"라고 배우로서 가능성을 높이 샀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에 대해 "페르소나 그 이상의 존재"라며 "누구의 페르소나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배우이다. 굳이 말한다면 모든 감독의 페르소나다. 국한하기엔 너무 위대한 배우이고, 훗날 위대한 배우를 명명할 때 이병헌과 함께 둘이 있을 것 같다"라고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송강호를 보며 느낀 건데 훌륭한 배우가 되는 건 역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다. 겸손하지 않으면, 그리고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그 지점까지 못 가는 교훈 같은 게 있다. 정상에 오르는 건 어쩌면 쉬울 수 있는데 그걸 유지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진짜 어려운 지점이고. 근데 송강호가 바로 훌륭한 연기자가 된다는 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 그걸 증명해 준 배우인 거 같다. 가끔 제가 다른 표현으로 현장에 제작자 한 명 더 있는 거 같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만큼 송강호는 모든 걸 다 본다는 거다. 꼭 배우 마인드가 아니라 끊임없이 면밀히 검토하며 현장을 지킨다. 자기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하면 든든함이 있다"라고 치켜세웠다.
김지운 감독의 열정과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거미집'은 오는 2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