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발적 감산을 시작한 이후로 유가는 계속 상승 중이다. 당초 시장에선 사우디의 감산이 단기적인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연말까지 감산을 연장한다는 소식에 배럴당 90달러 선을 돌파했다.
다안 스트루벤 골드만삭스 수석 연구원은 "OPEC(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 국가들이 내년 말까지 감산을 유지하고 사우디가 점진적으로 생산을 늘리는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유럽의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내년 말 배럴당 107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또 한번 인플레이션 우려가 자극되고 있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서며 각국의 물가 수준이 높아졌다. 현재도 고물가가 유지되고 있는데 여기서 유가가 또 상승하면 고금리·긴축 기조가 계속될 수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으나 올해 한차례 기준금리 인상 여지를 남겨뒀다. 유가를 포함한 전체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다는 걸 고려한 결정이다. 아울러 연준은 PCE(개인소비지출) 상승률의 올 연말 전망치를 3.3%로 제시했는데 지난 6월(3.2%) 제시한 것보다 높았다.

기업의 비용이 증가해 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은 증시에서 자금을 빼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주요 지수도 부진을 면치 못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직전 거래일보다 72.2포인트(1.64%) 내린 4330을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국내 자산시장도 마찬가지로 불안한 상황이다.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지속에 코스피지수는 간신히 2500선을 유지 중이다. 증권가는 고유가가 국내 기업 이익 체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분석한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공급측 유가 상승과 마진 간 상관계수가 반비례하는 업종은 유틸리티, 비철, 디스플레이, 필수소비재, 반도체"라며 "운송, 기계, 상사, 철강, 조선 등 산업재 및 소재 내 업종들은 마진을 잘 보호할 수 있고 원재료 부담 판가 전이가 용이할수록 (유가 상승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전문가들은 한국전력 (19,170원 ▲40 +0.21%)을 주목하라고 했다. 그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를 냈던 한전이 이번 유가 상승으로 또 한번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천연가스 등 대체 에너지 생산·발전 기업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나민식 SK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가 상승이 전력조달비용을 상승시키며 내년에도 영업손실 8000억원을 낼 것"이라며 "차입금 증가와 금리상승으로 재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