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인디브랜드 양성소 '올리브영'...수출까지 밀어준다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23.09.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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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K-뷰티, 성공 방정식이 변했다 ⑤

편집자주 한국 수출을 이끌 K-뷰티의 산업 구조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화장품 대기업의 고급 브랜드가 수출의 첨병 역할을 했다면, 한국 ODM의 높은 제조경쟁력과 톡톡 튀는 인디브랜드의 마케팅 아이디어가 만나 전세계 젊은 소비자들을 동시공략한다. 코로나19(COVID-19) 기간동안 전세계적인 온라인 마케팅·구매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화장품의 기술력과 참신함을 빠르게 인정받은 덕분이다. 전세계를 새롭게 두드리고 있는 K-뷰티의 현 상황과 발전 가능성을 짚어본다.

지난해 8월 미국 LA에서 열린 K팝 콘서트 KCON에서 올리브영이 체험 부스를 열었다./사진제공=CJ올리브영지난해 8월 미국 LA에서 열린 K팝 콘서트 KCON에서 올리브영이 체험 부스를 열었다./사진제공=CJ올리브영


#클린뷰티 브랜드 토리든 대표는 2017년 파우더 미스트를 개발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직접 올라와 올리브영에 입점을 요청했다. 올리브영은 토리든에 '입점을 위해서는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온라인상에서 인지도를 먼저 쌓길' 조언하며 제품도 다양하게 개발하길 권했다.

토리든은 실제로 세럼, 크림 등을 개발해 2019년 올리브영에 입점, 현재는 스킨케어 부문 베스트셀러 브랜드가 됐다. 이후 올리브영 글로벌몰은 물론 아마존에도 입점하며 전세계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최근에는 패션디자인, 회계사 등 다양한 출신의 CEO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며 "브랜드와 상품의 특징이 명확하고 트렌드에 부합하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쉬워진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 인디브랜드들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신생브랜드들도 매출 100억원을 단기간에 넘기는 사례가 왕왕 나온다. 화장품 제조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들이 맡는다면 판매는 H&B(헬스앤뷰티) 기업인 올리브영이 맡아준 덕분이다. 올리브영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파악해 신생 브랜드들을 코칭, 동반성장은 물론 수출까지 돕고 있다.

24일 올리브영에 따르면 지난해 올리브영에서 연간 매출이 처음으로 100억원을 넘어선 브랜드 수는 21개에 이른다. 이들 브랜드의 매출은 전년 대비 평균 127% 증가했다. 특히 넘버즈인, 어뮤즈, 데이지크, 어노브 등 인디브랜드들은 입점 1년 만에 매출이 100억원을 넘었다. 올리브영은 전반적으로 화장품의 질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인디브랜드에 대한 경험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색다른 아이디어나 차별화 포인트를 가진 트렌디한 제품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다는 설명이다.



과거 화장품 회사들은 스킨·로션 등 기본적인 화장품 라인업을 다 갖추고 브랜드를 출시했다. 최근 인디브랜드들은 특색있는 제품 3~4개를 통해 이름을 알린 뒤 상품을 점점 확대한다. 그만큼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진 셈이다. 넘버즈인은 피부 거칠기를 잡아주는 결세럼에서 클렌징오일과 패드 등으로, 데이지크는 섀도우 팔레트에서 블러셔나 립 등으로 신상품을 확대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이 2018년에 인수한 3CE, 프랑스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가 2019년에 인수한 닥터자르트 등도 올리브영에서 기반을 키운 브랜드들이다.

출발이 쉬워지다보니 화장품 기업들은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 생산실적이 있었던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2018년 6487곳에서 지난해 1만119곳으로 5년 만에 56%가 증가했다. 올리브영은 처음 시작하는 화장품 중소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면서 브랜드에는 사업 방향성을, 소비자에게는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올리브영 글로벌몰에서 판매한 뷰티박스 이미지/사진제공=올리브영지난 4월 올리브영 글로벌몰에서 판매한 뷰티박스 이미지/사진제공=올리브영
홈페이지에 있는 입점 상담란을 이용하면 누구나 입점 신청이 가능하다. 올리브영이 코로나19(COVID-19) 기간인 2020~2022년 3년 동안 발굴한 인디브랜드는 300여개에 달한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인디 브랜드들은 제품 효능은 좋은데 오프라인 진열에 패키지가 맞지 않다거나, 온라인 마케팅 경험이 없어서 효과적인 방법을 모를 수 있다"며 "이런 부분들을 화장품 사업 노하우를 갖고 있는 올리브영이 조언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직구몰인 '글로벌몰'을 통해 인디 브랜드 수출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몰은 취급 브랜드 중 70%가 인디 브랜드로 지난해 말 기준 취급 브랜드만 1만5000개, 판매 국가는 150여개국에 달한다. 역직구는 기업이 영리 목적으로 기업에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개인이 소비 목적으로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국가의 화장품 규제에 비교적 자유롭다는(중동 등 일부 국가 제외)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수출 전문 인력이 부족한 인디 브랜드들도 역직구를 이용하면 전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다.

역직구 시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배송비다. 배송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물건을 한번에 발송해야 하는데 인디 브랜드들은 주력 제품 개수가 적어 홀로 직구 시장에 나서면 경쟁력이 반감된다. 글로벌몰은 구매금액이 60달러 이상이면 대부분의 국가에 무료배송해주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K-뷰티를 경험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배송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올 1월부터는 유망 중소기업 브랜드를 모은 '뷰티박스'를 출시해 완판되기도 했다.

김민기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K-뷰티가 전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가운데, 올리브영과 같은 중소 화장품 유통 플랫폼의 교두보 역할이 중요해졌다"며 "중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부터 마케팅까지 비용 부담이 크지만, 글로벌 사업에 적극적인 플랫폼과의 시너지가 더해지면 K-뷰티 확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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