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신격호 롯데타워와 김재철 HMM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3.09.2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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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해 건물을 둘러보고 있다.(롯데그룹 제공) 2017.5.3/뉴스1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해 건물을 둘러보고 있다.(롯데그룹 제공) 2017.5.3/뉴스1


2009년은 롯데그룹 역사에서 특별한 해로 기억된다. 롯데그룹이 추진한 제2롯데월드(롯데월드타워) 건축계획이 현재와 같은 555m로 허가가 난 해다. 1921년생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알려진 마천루 건설은 그가 90이 다 돼서야 현실화됐다.

신 명예회장의 마천루 꿈은 1987년부터 시작됐다. 서울시로부터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일대 8만7770m2(2만6500평)' 부지를 매입하고 '63빌딩 2배 높이로 한국의 디즈니월드를 짓겠다'는 꿈을 키웠다.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렸다. 조감도를 수십번 바꾸고 설계변경하기를 수차례 했음에도 매번 쓴잔을 마셔야 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군이었다. 초고층 건물 부지가 수도권 공군 전력의 핵심인 서울공항(성남비행장) 활주로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에서 롯데월드타워가 아닌 서울공항 활주로 각도를 틀어 재건설하는 방안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신 명예회장의 꿈은 이뤄지게 됐다.

롯데월드타워 건설이 신 명예회장에게 특별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은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다. 은둔의 기업가로 불리는 그이지만 롯데월드타워 건설현장에 몇번이고 방문한 것이 보도됐을 정도다. 심지어 치매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현장 보고를 받았다. 롯데월드타워가 '신격호 도전의 역사'에 정점으로 손꼽히는 배경이다.
김재철동원그룹회장이 1969년 8월 동원 최초의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여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동원그룹김재철동원그룹회장이 1969년 8월 동원 최초의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여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동원그룹
올해 구순을 앞둔 또 한명의 기업가가 있다. 1935년생인 동원그룹 김재철 명예회장이다. 신 명예회장이 유통업을 기반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면 김 명예회장은 수산업을 토대로 성장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신 명예회장과 마찬가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했고, 일본 기업으로부터 큰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어에 능통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의 무대는 바다였다. 국내 첫 원양어선 지남호 승선을 시작으로 바다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마도로스 기질을 키웠고 이후 선장에서 기업가로 변신해 해양업 성공모델을 제시했다. 참치를 잡아 납품하던 참치캔 1위 기업 스타키스트를 2008년 인수하며 수산업사(史)에 획을 긋기도 했다. 동원은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참치 어획량이 많은 그룹사다.

그의 기업철학은 다른 기업인들에게도 귀감이 됐다. 거액의 증여세를 자진납부했고, 무역협회장을 지내며 산업에 헌신했다. 문장가로서의 능력도 뛰어나 그가 쓴 글이 초중고 교과서에서 실릴 정도다.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세계가 보인다'는 에피소드는 김 명예회장의 저서에서 나온 사례다. 현재 그는 카이스트에 500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하는 등 후학양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사업가로서 그의 마지막 퍼즐은 해운사다.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나 HMM을 인수하는 것이 "해양기업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동원그룹은 인수전에 참여한 다른 그룹들에 비해 자본력이나 규모 면에서 약세라는 평가도 있지만 인수의지는 다른 후보군에 뒤지지 않는다. 도전의 역사를 기록해 온 '캡틴 김'은 신격호 명예회장처럼 구순을 앞두고 '바다의 마천루'를 세울 수 있을까.


지영호 기자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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