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방송 캡처
美문화원 앞 수상한 가방, 들어 올리자 '펑'…경북대생 5명 용의자 지목허병철군(당시 17세)은 폭발 직전인 밤 9시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귀갓길에 올랐다. 미국문화원 근처에서 내린 허군은 문화원 정문 앞에 놓인 가방 2개를 발견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허군은 작은 가방을 들고 근처 경찰서를 찾았고, "미국문화원 앞에 다른 큰 가방 하나가 더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이 간첩이나 공산주의자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테러범을 잡기 위해 수사력을 모았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경찰 등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는 용의선상에 74만여명을 올렸고, 그중 유력 용의자로 경북대 학생 5명이 지목됐다. 철학과 박종덕·안상학·우성수씨를 비롯해 역사교육과 손호만씨, 문헌정보학과 함종호씨였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경북대생 5명 '무죄'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에 대한 재심이 35년 만인 2018년 10월25일 대구법원에서 열렸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재심 청구자들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씨. 뒤로 안상학씨가 보인다. 우성수씨는 2005년 사망해 이날 부인이 대신 참석했다. /사진=뉴스1
전충남은 "(훈련소 무전장이) 9월 말경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 성공이란 내용을 감청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며 "반미 감정이 높은 남조선 청년 학생들이 (테러)한 게 아니라 우리 공작원의 용감한 행동에 의해 일어난 것이란 생각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훈련받던 중 북한 측 무전장 박창식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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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조사 결과 테러에 사용됐던 폭발물과 건전지 역시 북한 제품으로 밝혀졌다. 사건 진범은 당시 북한 노동당 연락부 소속 공작원 '이철'로 밝혀졌으며, 그는 테러 공적으로 국기훈장 1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진상이 밝혀진 뒤에도 경북대 학생들은 풀려나지 못했다. 당시 재판을 기다리며 수감돼 있던 학생들에게 국가보안법, 반공법, 집시법 위반 등 또 다른 죄목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미국문화원 테러 주범으로 지목됐던 박종덕씨는 징역 3년, 나머지 4명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억울함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재조명됐다.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해당 사건을 '반인권 사건'으로 판단해 진실규명을 권고했고, 박씨를 비롯한 이들은 2013년 재심을 청구했다.
사건 발생 35년 만인 2018년 10월25일 드디어 재심이 시작됐다. 피고인 측은 "1983년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 사건은 당시 수사 기관이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고문 등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 기소한 뒤, 형식적으로 재판을 진행해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한 사건"이라며 "이제라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심 시작 약 1년 만인 2019년 10월1일, 법원은 박씨를 비롯한 피고인 5명에 대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