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강국 日 사로잡은 K-뷰티..."한국 유행 궁금해"

머니투데이 도쿄(일본)=정인지 기자 2023.09.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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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K-뷰티, 성공 방정식이 변했다 ④

편집자주 한국 수출을 이끌 K-뷰티의 산업 구조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화장품 대기업의 고급 브랜드가 수출의 첨병 역할을 했다면, 한국 ODM의 높은 제조경쟁력과 톡톡 튀는 인디브랜드의 마케팅 아이디어가 만나 전세계 젊은 소비자들을 동시공략한다. 코로나19(COVID-19) 기간동안 전세계적인 온라인 마케팅·구매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화장품의 기술력과 참신함을 빠르게 인정받은 덕분이다. 전세계를 새롭게 두드리고 있는 K-뷰티의 현 상황과 발전 가능성을 짚어본다.

19일 일본 도쿄 시부야 로프트 매장에서 사람들이 한국 화장품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정인지 기자19일 일본 도쿄 시부야 로프트 매장에서 사람들이 한국 화장품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정인지 기자


#19일 일본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거리 시부야에 있는 대형 잡화점 로프트에는 평일 낮인데도 가을 화장품을 사기 위한 일본인들로 북적였다. 6층 매장 바로 앞에는 화제의 제품, 신상품 등으로 꾸며놓은 특별 매대가 있는데 라카, 롬앤, VT, 아누아, 힌스 등 한국 브랜드가 주로 자리를 차지했다. 이케다 아키코 로프트 홍보 담당자는 "소비자들이 이미 인터넷을 통해 브랜드를 알고 있기 때문에 K-뷰티 존을 따로 만들지는 않는다"면서도 "한국에서 신상품이 많이 나오다보니 매대 비중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매장 안에서 젊은 여성들은 핸드폰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화장품 정보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립 제품을 고르던 세이케 사야카씨(29세)는 "인스타그램에서 한국 화장품을 보고 구매하는 편"이라며 "르세라핌을 좋아해 화장 스타일을 따라할 수 있는 비슷한 색감의 제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강국 일본에서 K-뷰티 붐이 불고 있다. 일본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산 화장품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한 데 이어 올해도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일본 화장품 관계자들은 "과거에도 몇차례 K-뷰티 붐이 일긴 했지만 마스크시트 등 일부 상품에 그쳤다"며 "이번엔 제품군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고 있어 확실히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COVID-19) 기간 동안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는 데 익숙해진 Z세대들이 한국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화장품 소비를 늘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초반에는 저렴한 상품을 시험삼아 사보다 질에 만족해 반복구매를 하다보니 점점 고가의 K-뷰티도 늘고 있다.

19일 일본 도쿄 시부야 로프트 매장 신상품 매대에 한국 화장품들이 진열돼 있다/사진=정인지 기자 19일 일본 도쿄 시부야 로프트 매장 신상품 매대에 한국 화장품들이 진열돼 있다/사진=정인지 기자
로프트는 올해만 한국 화장품 브랜드 50~60개를 신규 입점 시켰다. 로프트는 일본 전역에 약 150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인터넷에서 주로 팔리던 한국 화장품이 오프라인 매장까지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대형잡화점인 플라자도 비슷하다. 약 110개의 점포가 있는 플라자는 올해 15~20개 한국 브랜드를 신규 입점시켜 총 60개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개성을 강조한 한국 인디브랜드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야마나카 아즈사 플라자 홍보담당자는 "한국 화장품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상품이 많다"며 "미용액(앰플·세럼 등)에 비타민C나 시카 등 영양성분을 넣어 고성능을 강조한 것도 일본 소비자에겐 새롭다"고 말했다. 일본 화장품 대기업들은 소비력이 높은 40대 이상을 타깃으로 삼다보니 새로운 색상이나 화장법 등을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반면 SNS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익숙한 Z세대들은 해외 상품을 찾고 구매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설명이다.

19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는 K팝 스타들의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왼쪽은 블랙핑크 로제, 오른쪽은 BTS의 제이홉/사진=정인지 기자19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는 K팝 스타들의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왼쪽은 블랙핑크 로제, 오른쪽은 BTS의 제이홉/사진=정인지 기자
K-팝의 영향력도 크다. 일본에서는 잡티를 가리기 위해 커버력이 강한 파운데이션과 화려한 색상의 아이셰도우가 인기다. 반면 한국은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을 위해 가벼운 파운데이션을 사용하고 아이셰도우보다는 애교살이나 립에 포인트를 두는 편이다. 이런 차이를 낯설어하는 소비자들도 있었지만 블랙핑크, BTS 등 K팝 스타들이 샤넬, 루이비통, 티파니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모델을 맡으면서 한국 트렌드에 보다 익숙해지고 있다. NHK, 요미우리 신문 등 현지 언론들도 지난해 한국산 화장품(향수·샴푸 포함) 수입액이 775억엔(약 7050억원)으로 프랑스 화장품(764억엔)을 처음으로 웃돈 데 대해 "K-팝 등 연예인 영향"을 주요 배경으로 꼽고 있다.

19일 일본 하라주쿠 앳코스메 매장에는 각 부문에서 높은 순위를 얻은 한국 화장품들이 전시돼 있다./사진=정인지 기자19일 일본 하라주쿠 앳코스메 매장에는 각 부문에서 높은 순위를 얻은 한국 화장품들이 전시돼 있다./사진=정인지 기자
높은 품질을 기반으로 반복 구매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VT의 시카 데일리스킨마스크는 일본 최대 뷰티 플랫폼 앳코스메에서 2022년 마스크시트 부분에서 1위를, 롬앤의 글로스팅 멜팅밤은 2023년 립스틱부문에서 2위, 티르티르의 마스크 핏 레드파운데이션은 2023년 리퀴드파운데이션 3위 등을 차지했다.


소비자 반응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면서 한국 기업들은 보다 가격대가 높은 상품까지 수출 중이다. VT는 최근 일본에서 리들샷 S 300을 판매 중이다. 미세침 형태의 성분으로 피부에 시카 성분을 흡수시키는 제품으로 약 4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플라자 측은 "Z세대 사이에서 품질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 40~50대도 관심을 갖고 구매한다"고 말했다. 굳이 윗세대를 겨냥하지 않아도 스킨케어 등에서 품질에 만족하면 소비자 층은 자연히 확대된다는 설명이다. 로프트도 "타사에 비슷한 제품군이 없거나 차별화된 제품은 중고가격대도 입점하고 있다"며 "한국 화장품은 디자인이 예뻐 선물용으로도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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