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건설사, 빌려줄 돈 없는 금융기관…'줄도산' 벼랑 끝 몰렸다

머니투데이 배규민 기자, 김평화 기자, 홍재영 기자 2023.09.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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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부동산PF 자금경색 악몽 재현되나 (上)

편집자주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건설업계도 타격이 컸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자금을 구하지 못한 중견중소사들은 부도를 맞았다. 정부가 진화에 나서면서 불씨는 잠시 잦아들었으나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1여년을 맞아 최근 부동산 PF 시장과 현 정부 정책의 한계와 방향성에 대해 짚어봤다.

"두달째 80억 못 구해" 발동동…돈줄 마른 건설사들, 줄도산 공포
돈 없는 건설사, 빌려줄 돈 없는 금융기관…'줄도산' 벼랑 끝 몰렸다


#대구 A사업장. 브릿지론에서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넘어가지 못해 만기 연장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정부 유관기관 보증을 통해 본 PF를 알아보는데 시세 대비 10% 낮은 분양가 등 전제 조건이 있다. 공사비 인상과 금융비용 상승을 생각하면 준공해도 수익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부채를 떨어내기 위해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경기도 B사업장. 브릿지론 200억원을 조달하기 안간힘을 쓰고 있다. C 저축은행에서 한 번에 120억원을 조달해 다른 사업장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인데 남은 금액 80억원을 두달째 구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PF 시장에서 2금융권마저 발을 빼면서 신규 조달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지난해 하반기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 경색이 이뤄진 후 정부가 유동성 지원에 나섰지만, 부동산 PF 시장은 더 어려워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부동산 PF의 주요 참여자인 금융기관이 자산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대거 이탈하기 때문이다. 자금은 구하기 어렵고 공사비 인상으로 수익성은 빨간불이 켜졌다. 내년 하반기까지 시장 침체와 자금 경색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부동산 PF를 담당하는 다수의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보다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한다. 부동산 PF 담당 증권사 임원은 "1금융권인 은행은 아예 부동산 PF 시장에서 발을 뺐고 손해보험사도 최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캐피탈, 증권사, 저축은행 일부 정도만 겨우 검토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2금융권에 대한 자산건전성 관리를 주문한 데 이어 최근에는 증권사에 대해서도 부동산 PF 부실 관리를 주문했다. 그마저 참여했던 증권사도 발을 빼면 PF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신탁사 담당 임원은 "부동산 PF의 큰 손이라 불리는 새마을금고가 신규 취급을 중단하면서 브릿지론, 본 PF 신규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면서 "핵심 위치 사업장도 조달 자금 규모가 크면 모으기 힘들다. 일부만 참여하는 독과점체제가 되면서 부동산PF 대출 선순위는 10~12%, 중후순위는 부르는 게 값인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PF 대출은 브릿지론, 본 PF, 중도금대출, 잔금대출 순서로 자금이 돌아야 하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면 자금이 회수되지 않고, 이에 신규 공급이 또 막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탁사 다른 관계자는 "신협, 축협, 새마을금고 등이 최근에는 집단대출인 잔금대출도 중단했다"면서 "잔금대출이 막히면서 준공이 났는데도 자금 회수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만기 연장을 요구해 짧은 주기로 연장하는데 이자 부담만 늘고 개발이익은 사라져 사업성이 악화했다"고 토로했다.


돈줄이 막힌 건설사들은 위기에 놓여 있다. 건설사의 PF 보증 규모 자체가 줄지 않고 착공·분양이 지연되면서 기존 우발채무는 해소되지 않는다. 나이스신용평가가 건설사 10곳(표 참고)의 PF 보증 규모를 집계한 결과 올 6월말 28조4781억원으로 지난해 9월말(27조3053억원)보다 1조1728억원(4.3%) 늘었다.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시공사가 추가적인 신용 보강을 제공하는 사례가 생겨 부담은 더 늘어난다.

중소·중견뿐 아니라 주택 브랜드와 자금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도 위기설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미착공사업장의 비중이 절반을 넘고 지방에 사업장이 많은 A·B·C 건설사에 대해 일부 대주단은 당분간은 관련 사업장 PF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내부 지침을 세운 곳도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작은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부도가 나지 않겠지만 일각에서는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평가도 있다"면서 "하반기 위험 요인이 사라질지 지켜본 후 부동산 PF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부 공사비를 조달하는 분양물 PF는 안정적이서 예전엔 자금을 대기 위해 금융기관이 줄을 섰지만 요즘은 핵심 지역, 대형사라도 금액이 많으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공사비 인상으로 수익성이 낮아지는데, 공사비 회수는 늦어지고 조달 환경은 더 악화했다"면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년 하반기까지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사비가 오르면서 추가 자금이 필요한데 작은 사업장은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준공이 또 늦어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올 하반기 건설사의 신용위험이 더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주택경기의 회복이 지연될 경우 중견 이하 건설사들이 직면하는 신용위험이 점차 상위 건설사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다. 분양실적이 저조한 현장이 많고 현금흐름과 재무안정성이 악화하거나 PF 우발채무 규모가 유동성과 재무 여력에 비해 과다한 회사가 대상이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회복이 더디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청약 시장이 살아났지만 지방은 여전히 미분양 위험이 높다. 대구, 대전, 전남, 경북 등 지방에서 초기 분양률은 30%를 밑돈다. 같은 수도권이라도 외곽은 분양을 미루거나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 올 7월말 전국 미분양 물량은 6만3087호로 여전히 높다. 이 중 악성 재고인 준공 후 미분양물량이 9041호(14.3%)를 차지한다.

건설사들 자금확보 '특명'…미뤄둔 위기, '공포의 결제일' 째깍째깍
돈 없는 건설사, 빌려줄 돈 없는 금융기관…'줄도산' 벼랑 끝 몰렸다
건설사들의 자금 확보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올해 상반기 만기를 연장했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관련 채권들의 '결제일'이 다시 도래하면서다. 비교적 자금력이 강한 대형 건설사들까지도 저만의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관련업계에선 올해 상반기 이미 터졌어야 할 상처를 묵혀 곪아가는 상태라고 본다. 그 사이 공사비와 금리가 더 올랐고 분양시장 분위기도 냉랭하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지난 14일 금융기관에서 1900억원을 빌렸다. 차입기간은 1년, 대출금리는 6% 후반대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에 우호적인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했다. 현대건설은 최근 1200억원치 회사채를 발행하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차환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사들은 자금조달을 위해 높은 수준의 금리를 감수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 8일 옵션부사채 250억원치를 발행했다. 조기상환권을 통해 채권 원리금을 만기(1년 6개월) 전 갚을 수 있는 조건이다. 대우건설은 지난달 29일 옵션부사채 200억원치를 발행한것까지 2주 새 총 450억원치를 발행했다. 채권 금리는 7% 초반대로 대우건설 신용수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금호건설은 지난달 100억원 규모 무보증 사채를 발행했는데, 금리가 10%에 육박한다. 동부건설도 사모사채를 9%대 금리에 발행했다.

건설사들의 자금조달이 녹록지 않은 이유는 시장이 불안해서다. 지난해 말 강원도 레고랜드발 신용경색으로 올해 초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는데, 금융당국이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언발에 오줌'식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디폴트를 최소화하라며 부실채권 만기를 6개월 이상 연장하도록 요청했다.

신용평가사들의 건설사들에 대한 사업전망도 부정적이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한국신용평가(한신평)·NICE신용평가(나신평) 등 국내 신용평가사 3사는 상반기 정기평가에서 태영건설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하향조정했다. 태영건설의 신용하락은 여러 사업장에 PF 신용보강을 제공해 3월 말 기준 PF 보증 규모가 2조4000억원까지 증가했기 때문. 특히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지방 비중이 높다는 게 재무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한신평과 한기평은 한신공영 신용등급을 기존 'BBB+(부정적)'에서 'BBB(안정적)'로 내렸다.

대형건설사도 예외는 아니다.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여파를 겪는 GS건설도 신용등급 하락 위기다. 한기평은 GS건설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고, 나신평은 GS건설에 대한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한신평동 최근 GS건설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조정했다. GS건설은 검단아파트 사고로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 직권 영업정지 8개월, 서울시 2개월 영업정지 요청 등 고강도 행정 처분을 받았다.

앞서 한기평은 HDC현대산업개발의 등급·전망을 'A(부정적 검토)'에서 'A(부정적)'로 변경했다. 롯데건설에 대해서는 한신평과 나신평이 신용등급 및 전망을 각각 'A+(부정적)', HDC현대산업개발을 'A(부정적)'로 유지해 부정적 전망이 여전하다.

한 증권사 부동산 PF 관련 실무자는 "상반기 리스크를 하반기로 미뤄둔 결과, 자금시장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묶어둔 결과 시장상황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차주들은 이자를 못내니 살려달라고 하고, 저축은행 등 대주들은 올해 초 때와는 달리 이제는 무수익자산이 너무 많아 연장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레고랜드 1년, 단기 자금시장 금리 상승...증권가 "10월엔 안정"

레고랜드 사태가 1년을 맞으면서 당시 고금리로 조달했던 정기예금과 은행채의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에 단기자금 금리가 상승했다. 여러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유동성 위기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계절적 영향이 커 단기 변동성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 정기예금 만기 돌아온다…단기자금시장 금리 상승

돈 없는 건설사, 빌려줄 돈 없는 금융기관…'줄도산' 벼랑 끝 몰렸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는 4.01%까지 올랐다. 그간 큰 폭의 변동 없이 유지돼 왔으나 지난 3월23일 4.01%를 기록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 역시 3.78%로 상승했는데, 이는 지난 1월16일의 3.79% 이후 가장 높다.

CP와 CD 외에도 채권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 중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5월 중순만 하더라도 3.2%대에 머물렀지만 지난 11일에는 3.865%를 기록했다. 지난 5월 3.3%대를 보이던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지난달 22일 3.986%까지 올랐고 최근 3.9%대를 유지 중이다. AA- 등급의 회사채(무보증 3년) 금리는 지난 3월24일 3.928%로 연저점 마감했지만, 이후 꾸준히 상승하면서 지난 11일에는 4.622%까지 올랐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채권 금리 상승에 대해 "수급이 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채권 공급은 늘어나는 상황인데, 이를 받아줄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 채권 공급이 늘고 금리가 오르는 것은 지난해 채권 시장 유동성 위기를 촉발시킨 레고랜드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은행채와 CD의 발행이 늘고 있는데, 이는 주로 정기예금의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리가 크게 올랐던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가입한 정기 예금의 만기가 가까워 졌다. 이에 예금이 인출될 가능성에 대비해 은행이 유동성을 마련할 필요가 늘었다.

◇분기말·외평채 이슈 겹쳐…"시간 지나면 계절적 요인 해소"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오른쪽 두번째)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브리핑실에서 2023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날 세재실장을 비롯해 예산실장, 재정관리관, 경제정책국장, 국제금융국장, 행안부 지방재정국장, 교육부 교육자치협력안전국장이 동석했다./사진=뉴스1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오른쪽 두번째)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브리핑실에서 2023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날 세재실장을 비롯해 예산실장, 재정관리관, 경제정책국장, 국제금융국장, 행안부 지방재정국장, 교육부 교육자치협력안전국장이 동석했다./사진=뉴스1
반면 수요는 시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9월은 3분기 마지막 달이기 때문이다. 법인은 보통 분기 결산을 앞두고 현금을 챙겨 뒀다가 다음 분기 다시 매수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어 미리 장부를 비우려는 수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다 정부가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서 20조원을 끌어오기로 한 점도 불안 요소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외평기금 활용 시 머니마켓펀드(MMF) 와 단기채권의 환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기자금 및 채권 시장 변동성이 늘고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추가로 내년에 단기물로 발생되는 원화 외평채 조달이 최대 18조원 늘어나는 부분도 단기시장에 부담"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단기자금시장의 금리 상승이 레고랜드 사태와 1주년과 겹치며 다시 유동성 위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증권가는 최근 금리 상승이 계절적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희박하게 본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우려도 사그러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원태 SK증권 자산전략팀장은 "최근 단기자금시장 변동성은 계절적 악재와 외평채 이슈가 겹친 영향"이라며 "외평채 문제로 변동성이 커진다면 정부가 나서서 안정화 할 것으로 본다. 최근 상황은 10월이면 풀릴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도 "고금리 정기예금 만기는 소폭의 예금금리 인상 수준에서 수신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9~10월 소폭의 크레딧 약세 국면이 예상되나 11월 이후에는 내년을 바라보는 선취매 수요가 조심스럽게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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