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민족의 영웅으로 떠오른 마라토너 손기정(하정우). 가슴에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손 기테이’라는 이름으로 뛰어야 했던 그는 시상대에서 월계관으로 부끄러운 일장기를 가렸다. 이로 인해 일제의 압박을 받고 선수생활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라는 독립했지만, 손기정의 기록은 일본에 귀속돼서 한국 국적으로 세계대회에 나간 공식 기록이 없다. 한국인이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세계 권위의 대회에 출전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베를린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남승룡(배성우)은 눈여겨보았던 서윤복(임시완)과 함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자고 손기정을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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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국뽕’과 ‘신파’ 때문은 아니다. 순간순간 먼저 내달리는 OST가 튀긴 하지만,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는 ‘국뽕’과 ‘신파’를 최대한 덜어내고 담담하게 그리고자 한 의도는 보인다. 실의에 빠졌으나 목표를 상정하고 엄격하게 나아가는 손기정, 가난한 환경 속에 아픈 엄마를 돌보기 위해 달리는 서윤복, 그리고 손기정과 서윤복 사이의 충돌을 중재하고 안팎으로 챙기는 남승룡의 조합이 안정적인 삼두마차 형식을 꾀하는 건 좋다. 그러나 캐릭터들, 특히 극을 이끄는 손기정과 서윤복의 캐릭터를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담은 부분이 아쉬운 포인트. 체지방률을 6%까지 낮추며 마라토너 그 자체로 변신한 임시완의 투혼은 다가오지만, 엄마와의 전사(前史)나 손기정과의 갈등은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갈등을 극복하는 전개도 99% 예상 가능할 만큼 투박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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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음주운전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배성우가 맡은 남승룡은 인상적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손기정의 명성에 가려졌던 남승룡의 진가를 ‘1947 보스톤’에서 여실히 발견할 수 있다. 보증인으로 나서는 보스턴 현지 사업가 백남현을 연기한 김상호의 감초 연기도 분위기를 살린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굴지의 히트작을 연출했던 강제규 감독이 간만에 메가폰을 잡은 ‘1947 보스톤’은 추석 시즌인 오는 27일 개봉한다. 2023년의 MZ세대,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 관객들이 보기엔 올드하다 여겨지겠지만 50~60대 이상 부모님과 함께 관람할 예정이라면 추석 영화 중 가장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 어쨌거나 한민족의 DNA 어디 안 가고, 결정적인 장면에선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주니까.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