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가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인터뷰]

머니투데이 김나라 기자 ize 기자 2023.09.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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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서 열정 넘치는 영화감독 역 맡아 명불허전 연기

/사진=㈜바른손이앤에이/사진=㈜바른손이앤에이


"'거미집', 그래 이게 영화지!"

배우 송강호가 김지운 감독과 다시 손잡고 영화 '거미집'으로 웰메이드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극장 관람 문화가 시들해진 현재, 관객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며 충무로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할 전망이다.

송강호는 전 세계를 사로잡은 '칸의 남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의 주역으로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작년 '브로커'로 한국 최초 칸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썼다.



영화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을 섭렵한 송강호는 '국가 대표급 배우' 위상에 걸맞은 신작 '거미집'(감독 김지운)으로 돌아왔다.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감독 역할을 맡아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게다가 '믿고 보는 조합' 김지운 감독과 다섯 번째로 의기투합하며 신뢰를 더한다. 두 사람은 그간 협업으로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 등 수작을 만들었다.

'거미집' 역시 일찌감치 해외 유수 영화제의 연이은 러브콜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으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15년 만에 함께 칸 레드카펫을 밟는 쾌거를 맛보기도 했다.



이들 연륜과 내공의 결정체 같은 '거미집'이기에, 충분히 티켓값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준 높은 완성도는 물론 서사 또한 액자식 구성의 흥미로운 전개로 차별화된 볼거리를 보장한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이 깐깐한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 제작자와 맞서며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송강호가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인터뷰]
송강호 스스로도 '거미집'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그래, 이게 영화지'. 찍는 내내 이 생각이 들더라"라고 두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감상을 남겼다.


오랜만에 '영화의 맛'을 느꼈다는 것. 송강호는 "'거미집'은 영화의 소중함, 영화만이 갖고 있는 영화의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그리고 느끼게끔 만든 작품이었다. 그동안 못 봐온 형식이고 파격적인 면도 있는데, 이런 느낌이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오히려 귀해지지 않았나. '거미집'엔 영화만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관객분들도 반갑게 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품으로 다시 관객분들과 극장에서 소통하고 웃고 감동받는. 공간의 메커니즘이 그립고 그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라고 남다르게 표현했다.

송강호는 거듭 "'거미집'을 통해 '조용한 가족', '공동경비구역 JSA'(2000), '살인의 추억'(2003) 때 느낀 감정들을 받았다. 그때 앙상블을 맞춰 가며 열정적으로 촬영하던 설렘, 넘치는 에너지 말이다. 물론, 제 모든 작품이 다 나름의 소중한 가치가 있지만 '거미집'은 당시만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영화라는 게 두 시간 내에서, 관객분들에게 가장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얘기를 담아내기 위해 시나리오부터 연기, 연출 등 모든 에너지를 다 함축해 넣어야 하고 굉장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희열까지 꽉 차 있어야, 이것이 폭발했을 때 그게 영화이고 소중한 가치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이런 지점에서 '거미집'이 달랐다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송강호는 "요즘은 산업적으로 예전처럼 찍을 수 없는데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과거엔 현장에서 여러 시도를 하며 바꾸기도 하고 그랬다. 그게 아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때까지였을 거다. 그때 정말 무지하게 고생했다(웃음).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게 사전에 콘티부터 연기든 뭐든 베스트로 준비된 상태로 시작해서 첫 테이크로 가야 한다. 여러 번 실험하며 할 수가 없는 산업이 되었다. 미리 해답을 얻은 채 가서 훨씬 편해졌다는 장점이 있다. 시간과 자본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 단점이라고 하면 과거와 다르게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없다는 건데 현재 시스템이 더 장점이 크긴 하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엔 감독님들이 영화 속 김감독처럼 재촬영을 원하시곤 했다. 허용되는 환경이었으니까. 저는 어떤 작품에서 8번을 재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감독님께 그랬다. '이렇게만 나오면 100번이라도 다시 찍겠다'라고. 감독님이 미안해하셨는데 그 얘기에 정말 좋아하셨다. 왜냐하면 제 진심이었고, 다시 찍은 게 훨씬 좋았으니까"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송강호가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인터뷰]
배우들의 연출 도전이 자연스러워진 만큼 연출의 뜻을 물었으나 송강호는 "배우만 하기도 벅차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 같다. 다재다능한 능력, 열정 이런 게 저한테는 없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봉준호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이 연출을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는데 정중히 고사했다. 근데 그렇게 진지하진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하신 거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걸작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의 캐릭터 김감독에 대해선 "한국 영화 현장에 대한 전체적인 오마주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기도. 송강호는 "'거미집'은 수많은 거장의 작업 현장, 모든 한국 영화계에 대한 오마주이다. 저 역시 김감독을 특정 누구라고 설정해 연기하지 않았다"라고 알렸다.

벌써 다섯 번째 동행, 김지운 감독과 작업은 무엇이 다를까.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은 늘 영화적 변주를 시도해서 강한 설렘을 준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엔 또 어떤 여행을 떠날까 두렵기도 하고, 또 어떻게 사람을 괴롭힐까 싶기도 한데(웃음).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이 크다. 25년을 같이 해서 감독님이 뭘 원하고 제가 어떤 호흡을 원하는지 서로 잘 알고 있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항상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촬영한다"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거미집'엔 송강호를 비롯해 배우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크리스탈), 그리고 박정수, 장영남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신구 조화로 신선함과 각기 개성이 돋보이는 명품 앙상블의 향연이 펼쳐진다. 역대급 시너지 효과가 폭발, 송강호도 자극받았을 정도다.

극 중에서 연출자로서 연기 열전을 지켜본 송강호는 "저도 영화 속 영화, 그 안에 들어가서 연기하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또 흑백이라 되게 멋있어 보이더라. 물론 제가 사냥꾼 역할을 잠시하긴 했지만. 배우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뜨거운 에너지를 받았다"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송강호가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인터뷰]
뿐만 아니라 송강호는 한국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배우로서 쏠린 관심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짓눌리고 그러지는 않는다"라고 초연한 자세를 나타냈다.

더불어 송강호는 "저는 작품 선택 기준이 '관객들에게 선물이 될 만한 영화인가'다. 흥행에 실패할지언정 새로운 시도들이 없다면, 관객분들은 틀에 박힌 영화를 계속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으니까. '거미집'을 선택한 것 또한 고여 있지 않고 항상 조금이라도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늘 작은 노력들을 해왔다. 고인물이 아니라, 열 발짝 못 되더라도 단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들 다 잘생기고 예쁘지 않나. 근데 저는 배우라는 느낌보다 평범하고 우리 이웃집 사람 같고 내 친구 같고 그러다 보니까 기회가 많이 온 것 같다"라고 전했다.

송강호의 연기투혼이 살아숨쉬는 '거미집'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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