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꿀 때다

머니투데이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2023.09.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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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1인당 국민소득은 76달러였다. 2022년 3만3000달러가 돼 400배 넘는 성장을 했다. 국가의 위상도 변했다. 원조받던 나라가 도움을 주는 국가로 변했다. 그뿐인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대회 4대 국제대회를 치른 그랜드슬램 국가가 됐다. 무엇이 이런 번영을 끌어냈나. 교육과 인재의 힘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인적자본 투자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끌어낸다는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을 발표한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이를 보여준 나라인 셈이다.

교육을 통한 성공신화는 계속될까. 부족한 천연자원과 지정학적 한계를 볼 때 인재 주도 성장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전제는 다른 방식으로 할 때다. 지금까지 교육은 국민의 학력수준을 빠르게 높이는 교사 주도의 지식전달 모델이었다. 전문가들이 설계한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의존했고 학생은 암기와 숙달, 정답 찾기를 했다. 학교는 많은 학생 중 소수의 인재를 가려내는 역할을 했다. 이는 빠른 추격, 양적성장, 모방형 혁신에 적합한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환경이 변했다. 경제는 모방 아닌 개척과 창조를 요구한다. 사회적 격차와 갈등도 커졌다. MZ세대는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기보다 각자의 잠재력을 개발해 집단의 혁신과 발전을 꾀해야 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인구가 줄어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역량이 중요해졌고 낭비 없는 인재활용을 도모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insanity)"이라고 했다.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꿀 때다. 당면문제를 조금씩 고치는 부분개편이 아닌 구조적 대전환을 해야 한다. 먼저 배우는 내용과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획일적 과잉교육'을 버려야 한다. 학교는 무얼 하는 곳인가. 각자 능력을 키워 사회적 가치를 발휘하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평생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것을 달달 외워야 하는 '닥치고 공부'는 구시대 유물이다. 불필요한 공부는 과감히 덜어내고 건강한 시민을 기르는 교육과 경험으로 채워야 한다. 학교는 아름답게 경쟁하고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격려와 포용을 전하는 방법을 익히는 곳이어야 한다. 규범과 질서를 따르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불의(不義)를 보면 나설 줄 아는 시민정신을 기르는 곳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의 가치와 국민으로서 의무를 배우는 경험도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독버섯처럼 커가는 '내 생각만 옳다는 편견과 독단'을 경계하는 태도도 학교에서 길러야 한다. 전기 자동차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아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학생을 주어진 틀에 묶어두기보다 새로운 발상을 격려하는 풍토에서 창의적 인재가 나온다. 우리는 시험대비용 교육 때문에 많은 것을 놓쳤다.



'자기 주도성'을 기르는 교육으로 나가야 한다. 입시라는 목표가 사라지면 갈팡질팡하는 학생이 많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게 고민이다. 삶의 목표와 진로를 정하고 무엇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지 못한 탓이다.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주어진 지식의 암기보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서 활용하는 탐구역량이 중요해졌다. 학창 시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평생토록 해야 할 일이다. 학교는 그런 기초역량을 기르는 곳 아닌가.

'점수 위주 상대평가'는 개인의 꿈, 진로, 역량개발에 역행한다. 성장과 발전보다 선발에 적합하다. 개인의 강점을 찾아 키우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교육적 기능을 하지 못한다. 100명의 학생에게 100개의 성공모델이 있다. 맞춤형 개별화 학습 시대를 열려면 학력은 물론 꿈, 진로를 진단하는 전인적 평가를 하고 입시에도 반영하는 평가혁명이 필요하다.

큰 틀의 교육개혁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내 자식을 포함한 미래세대를 위한 과제다. 학부모의 마음도 움직여야 하는 대통령 프로젝트다. 더 좋은 시대를 물려주려면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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