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정건전성 기조 속에서도 확대된 복지예산의 의미

머니투데이 김수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2023.09.1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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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사진=김수완 교김수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사진=김수완 교


지난 8월 말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24년도 예산안에는 어려운 재정여건에도 건전재정기조는 흔들림없이 견지할 것이지만, 동시에 국민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에는 제대로, 과감하게 투자하겠다는 편성 방향을 담았다고 한다. 이러한 방향이 실제로 어떻게 담긴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복지 예산에 주목해본다.

내년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242조9000억원이다. 전체 정부 예산안 656조9000억 원 중 37%를 차지하는 예산.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7.5% 증가한 금액이다. 보건복지부 예산만 보더라도 올해 109조원보다 12.2% 증가한 122조원을 편성했다. 전체 예산 증가율이 2.8%라는 점과 비교하면 복지예산에서만 4배 이상 증가율을 보였다.



코로나19(COVID-19)같은 경제위기 속에도 결코 줄어본 적이 없다는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이 지난해 대비 13.9% 감축된 것과 대조적이다. 강도높은 재정지출 억제 기조 속에서도 복지 예산 비중이 △절대적 규모로도 △상대적 비중으로도 △증가율로도 커진 내년 예산안은 정부가 민생을 챙기는 '복지'에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복지를 추구할 것인지도 세부 예산편성안을 보면 쉽게 확인된다. 가장 두드러진 증액 예산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예산이다.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저소득층에게 소득을 지원하는 이 제도는 올해 4인가구 기준 162만원에서 내년 183만4000원으로 대폭 인상된다. 지난 5년간의 총 인상액보다 더 큰 폭의 급여 확대다. 취약계층에게 보장성을 우선 강화하겠다는 약자복지 의지가 가장 잘 읽히는 대목이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평균 숫자) 0.7명의 위기 속에서 저출산 대책과 아동에 대한 사회투자, 사회서비스에 대한 예산 증가가 두드러진다. 육아휴직 기간을 18개월로 연장하고 육아기단축급여를 확대해 일과 육아의 병행을 강조했다.
양육비 부담경감을 위한 부모급여액도 대폭 상향됐다. 난임가구 출산지원은 올해 대비 2.4배 증가한다. 아동발달지원계좌 지원 예산도 전년 대비 1.5배 증액됐다. 아동돌봄정책의 핵심인 보육료 지원과 보육교사 처우개선 예산 역시 크게 늘었다. 저출산 심화로 아동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아동수당처럼 관련 예산이 대상자 감소에 따라 자연감소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큰 폭 투자가 이뤄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2024년도 예산안은 정부가 복지를 '국민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로 규정하고 약자와 저출산, 아동에 '제대로 과감하게 투자'하려는 복지의 방향성과 정책 우선순위를 한눈에 보여준다.

여전히 아쉬운 대목도 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투자가 그것이다. 또한 모든 복지예산의 증가가 정책적 의지를 담은 것은 아니며, 복지예산 증가를 모두 낙관적으로만 봐도 안된다. 내년 복지예산의 증가에는 제도적 확충 없이도 고령화로 자동으로 증액된 면이 있다. 노인의 70%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제도 확대 없이도 올해 18조5000억원에서 내년 20조2000억원으로 1조7000억원 증가하고 향후 증가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노인의 전반적인 소득자산수준이 10여 년 전에 비해 확연히 개선되고 있는 시점에서, 기초연금이 꼭 필요한 노인에게 더 갈 수 있도록 대상기준 합리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보험료 기반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에서도 재정압박이 심해질수록 정치적 부담이 큰 보험료 증가보다는 정부 재정투입 확대를 요구하는 경향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사회보장제도 재정의 통합적 관리와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체계적인 대응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무엇을 더 늘리고 효율화할 것인가, 고령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어느 때보다도 복지지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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