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바이오 강국' 먼 얘기?…임상시험 예산 반토막, 신약 사다리 끊긴다

머니투데이 박미주 기자 2023.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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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임상시험지원센터 내년 예산 57% 대폭 삭감, 상담센터 등 운영 어려워져… "예산 확대 필요"

[단독]'바이오 강국' 먼 얘기?…임상시험 예산 반토막, 신약 사다리 끊긴다


정부가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재단법인인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의 내년 예산을 57%나 삭감하기로 했다. 67억6200만원의 예산 중 38억6000만원이 사라지며 일부 사업이 중단 위기에 놓였다. 저렴한 비용으로 바이오기업의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 등을 지원하는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 운영, 의료기관 내 스마트 임상시험 체계 구축, 임상시험 상담센터 운영 등 사업이 없어지거나 차질을 빚게 됐다.

바이오 회사는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한 뒤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신약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그런데 큰 비용이 드는 임상시험의 국가 지원이 대폭 축소되며 사실상 신약 개발 사다리가 끊길 상황에 놓인 셈이다. 최근 고금리에 투자금이 급감하며 경영난에 빠진 바이오기업이 많아졌는데, 임상시험 지원마저 축소하면서 업계에 위기감이 감돈다. 지금이라도 국회에서 예산을 확보해 'K-바이오 강국' 실현을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복지부와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내년 복지부 예산에서 제약산업 육성지원 예산은 359억원으로 올해 446억원 대비 87억원 감액됐다. 이 중 상당 부분이 국가임상지원센터 예산 삭감분이다.

임상지원센터의 내년 예산은 29억200만원으로 올해 67억6200만원에서 57%인 38억6000만원이 줄어들었다. 사업별로 보면 스마트 임상시험 체계구축 예산이 올해 20억4200만원에서 내년 '0원'으로 아예 사라졌다. 이에 스마트 임상시험 시스템 구축 등 사업이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 임상시험 체계구축 예산 중에는 의료기관별로 정보를 연계하는 등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 국가임상시험관리시스템(CTMS) 구축 예산 12억7300만원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 예산도 없어졌다. 당초 복지부는 지난해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제약산업 5개년 계획에 따라 2027년까지 전국 60개 의료기관에 시스템을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까지 14개 기관에 보급됐는데 내년부터는 구축이 어려워진 것이다. 복지부의 청사진이 무색해진 셈이다.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공헌한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도 운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2021년 7월부터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지원하기 위해 '코로나19 임상시험포털'을 운영,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 항체치료제인 셀트리온의 '렉키로나' 등의 개발을 이끌어냈다. 통상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에 1년 반에서 2년 가까이 걸리는데, 국가적 모집을 통해 모집 기간을 1년 내로 단축했다. 공적 조직이란 점, 이미 형성된 네트워크 등으로 가능한 성과였다.

코로나19가 끝나면서 재단은 국가적 임상시험 지원을 위해 지난 2월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을 구축했다. 코로나19 임상시험포털은 내년 2월까지만 운영될 예정이라 새로 구축하고 임상시험 비용도 민간 기관 대비 6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돌연 예산이 끊기며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사진=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 캡처사진=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 캡처
임상시험 상담센터는 사라질 전망이다. 당초 6명이었던 상담직원이 1명으로 줄었고 내년에는 예산이 없어 이 직원의 고용마저 힘들어져서다. 임상시험 전문기관과 인력 육성도 못 하게 됐다. 임상시험 전문기관 육성과 전문인력 자격제 운영 예산이 3억4500만원에서 2억2300만원으로 1억2200만원 줄면서 임상시험수탁(CRO) 기관인증 평가와 컨설팅은 폐지하게 됐고 CRO 인턴십 지원도 없어지게 돼서다.


신종감염병 치료제·백신의 신속한 개발을 위한 감염병 임상시험센터 컨소시엄도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아주대병원·경북대병원·국립중앙의료원·고려대안암병원·서울성모병원 등 5개 컨소시엄에 34개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임상시험 연계를 지원 중인데 이 역시 예산이 삭감됐다.

해외 임상시험의 국내 유치 지원도 줄어든다. 관련 예산이 6억1500만원에서 4억2100만원으로 줄면서 사무실 임차료, 1명 인건비, 사절단 1회 운영 예산만 남아서다. 임상시험 연구 네트워크 구축은 전액 삭감됐다. 재단이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진행하던 임상 국제컨퍼런스 대관료 예산도 1억3500만원에서 4100만원으로 감소해 원활한 행사 운영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재단의 인력 감축과 조직 축소도 앞두고 있다. 연초 40명이었던 인력은 예산 삭감으로 현재 34명으로 줄었고, 추가로 10명을 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대로 진행되면 한국의 임상시험 경쟁력이 떨어지고 신약 개발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국회에서 임상시험 관련 예산을 증액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미 한국의 다국가 임상시험 기준 순위는 2019년 12위에서 2021년 10위로 올라섰지만 지난해 11위로 하락했다.

재단 관계자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은 70% 이상의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 필수 과정이고, 바이오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임상시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재단 운영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인건비와 운영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감염병 임상시험센터 컨소시엄은 국가 긴급 상황에 다기관 임상시험을 신속하게 수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하고,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도 감염병, 희귀·난치성 질환 등 공공이 챙겨야 하는 영역을 지원하기 위해 꾸준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와 업계에서도 지원 확대 필요성이 언급된다. 최근 열린 신약 개발 육성방안 포럼에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임상시험의 절대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투자 여력이 부족한 우리 기업들은 중도에 기술 수출, 내수 시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예산·자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미션형 프로그램이 있어야 세계 시장에서 기업 스스로 투자를 확장하며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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