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996년 9월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조사하는 한국해군 잠수함 승조원들과 내부 수색을 위해 투입된 UDT/SEAL 대원들. /사진=위키피디아
이 전화 한 통에 전 군이 발칵 뒤집혔다. 두 시간 만에 경비 태세를 최고 수준인 진돗개 하나로 격상하고, 상륙한 무장공비 15명에 대한 소탕을 시작했다. '진돗개 하나'는 실제 도발이 발생했을 경우 발령되는 가장 강력한 경계조치로 군과 경찰, 예비군은 다른 임무가 제한되고 즉각 지정된 지역에 출동해 수색 및 전투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 북한 상어급 잠수함 내부 모습. /사진=뉴시스
우리 측 피해도 상당했다. 군인 10명과 예비군 1명이 전사했다. 민간인도 4명 숨졌다. 3명은 공비의 총에 맞아 숨졌고, 나머지 1명은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변을 당했다.
부상자는 민간인을 포함해 2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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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사살된 공비는 우리 측 군복을 입고 있었다. 탈영병으로 처리된 표종욱 일병의 군복이었다.
군은 표 일병이 사라지자 "평소 여자관계가 안 좋았다"며 탈영으로 처리했는데, 알고 보니 표 일병은 공비에게 고문을 당하다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군의 수사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생포된 공비 "자수해서 같이 살자" 투항 권고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파손된 모습. /사진=뉴시스
침투의 목적과 공비 규모 등을 알려줬으며, 작전이 장기화하자 동료에게 "자수해서 같이 살자"고 투항을 권고했다.
이씨는 모든 작전이 종료되자 "북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남한에 귀순하기로 했다. 이후 해군에 특채돼 정훈 교관으로 활동했다.
실종된 공비, 어디로
북한 당국이 2017년 관영매체를 통해 밝힌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사망자 명단에 '김영일'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도주한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이에 군은 김영일이 우리 영토에 상륙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수색 작전을 종료했다.
김영일의 행적이 확인된 건 작전이 종료되고 한참이 지난 2017년이다. 북한 당국이 그해 관영매체를 통해 밝힌 사망자 명단에 '김영일'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김영일이 좌초된 잠수함에 승선한 것은 맞지만, 도주하다 어딘가에서 아사 또는 사고사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北 "백배, 천배 복수하겠다"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파손된 북한 상어급 잠수함의 후미에서 앞쪽을 바라본 모습. /사진=뉴시스
우리 정부가 북측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자, 북측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백배, 천배 복수하겠다"며 되려 역정을 냈다.
남북은 극한으로 대립했고, 결국 미국 정부가 개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 측은 한국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북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도 밝힐 것을 종용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그해 12월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을 통해 영어와 한국어로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남측 역시 공비 주검 24구를 북으로 보내며 사건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