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살만 왕세자는 그 요청을 이행했다. 외교관들에 따르면, 그는 중국측에 대표를 보내달라고 하는 등 회의준비를 직접 챙겼다. 총 42개국이 사우디 젯다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 대표를 파견했는데, 이들 나라 중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정하라는 서방의 압박에 저항해왔던 나라들도 있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석유가 넘치는 걸프국가들의 더 높은 야심과 솟아오르는 자신감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야심과 자신감은 작년의 에너지가격 급등 이후 더욱 커졌다. 이 걸프국가들은 일극(一極)을 넘어 다극(多極)으로 블록화되고 변화무쌍해지고 있는 국제정세 속에서 자신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제 갈 길을 찾아가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예측불허의 세계정세 흐름을 불안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반해, 사우디와 UAE는 이러한 예측불허의 흐름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다. 그들은 풍부한 자금력과 석유자원을 활용해 전통적인 서방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낮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모두 자신만만하고 자기주장 강한 지도자들이 보통 그렇듯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양자택일의 미국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UAE의 지도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은 여러 해에 걸쳐 이 작은 나라의 군사력과 자금력을 동원해 나라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큰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마찬가지로 빈살만 왕세자는 신속히 수천억 달러를 투입해 사우디 발전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자신의 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G20의 정상급 국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서로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경쟁하는 이 두 나라는 폭넓은 외교 네트워크를 엮어내면서 국제무대에서 자국을 '모두의 친구'로 자리매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데 열심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부분적으로 통상환경의 변화와 지정학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오랫동안 걸프지역에서 역외 세력으로서 지배적인 입지를 갖고 있었던 미국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현재와 같이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리스크가 아닌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극체제가 등장하면 자신들이 거기서 하나의 극(極)을 맡을 수 정책과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런던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IISS) 지역안보팀장인 에밀 호케이엄의 말이다. "그들은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따라서 그만큼 유연하고 거래지향적 접근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완전히 한 편에 서주기 바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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