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수술 내내 껌 씹던 '위암 명의'와 CCTV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09.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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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이달 25일 수술실 내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의료계의 마지막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법 시행을 불과 20일 앞둔 지난 5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는 "해당 법안이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의료계가 이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대한의사협회는 "CCTV를 촬영하면 집도의만의 수술 술기·노하우가 노출되고, 환자의 신체를 불가피하게 접촉할 때도 성범죄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병원협회도 "현재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등의 전공의 지원자가 정원 미달인 상황에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의료진을 감시하면 오히려 필수 의료 붕괴가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우려 뒤엔 그들만의 이유도, 일리도 있다. 또 CCTV를 설치하는 수술실은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와 밀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CCTV의 기능은 감시만 있는 게 아니다. CCTV는 예상치 못한 의료사고나 범죄에 발 빠르고 객관적으로 대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CCTV의 설치를 반대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이런 순기능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대안'도 내놨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기자는 지난 10여년 간 수술실에서 다양한 수술 현장을 취재했다. 적어도 취재 때 만난 의료진은 수술실에서 환자에게 열과 성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 말이다. '위암 명의'로 소문난 한 의사가 집도하던 날, 수술실에선 '쩝쩝' 소리가 계속 들렸다. 집도의가 복강경 수술로 위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내내 껌을 씹었다. 의료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소독하며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관리하는 수술실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과연 수술실에 CCTV가 있었어도 그는 똑같이 행동했을까?

'스위스 치즈의 효과'라는 말이 있다. 구멍이 뽕뽕 뚫린 스위스 치즈를 여러 장 겹칠 때 대부분은 구멍이 엇갈려 막힌다. 하지만 겹친 치즈의 특정 구멍 위치가 공교롭게도 일치한다면 구멍이 뚫린다. 우연한 일이 여러 번 겹쳐 대형 사고가 벌어질 때 스위스 치즈의 효과로 빗댄다. 어쩌면 당시 수술실에서 집도의의 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마침 마스크가 헐거워 껌이 마스크 밖으로 탈출했고, 하필 그 껌이 수술 부위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의협은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의사와 환자 간 신뢰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답대로만 수술한다면 CCTV가 있든 없든 의료진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자기 몸을 믿고 내어주는 환자는 CCTV가 있어도 개의치 않는 의사에게 수술받고 싶어 할 것이다. 과연 CCTV 설치가 의사와 환자 간 신뢰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할 문제인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는 의협과 병협이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또 CCTV 설치 의무화를 반대한다면 예상치 못한 의료사고나 범죄에 어떤 객관적인 근거자료를 내놓을 수 있을지 대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우보세] 수술 내내 껌 씹던 '위암 명의'와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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