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준 도라지물에 숨진 모녀…아들만 살아남았다[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2023.09.12 05:00
글자크기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022년 9월12일.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의 한 빌라에서 모녀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을 발견한 건 15살 중학생 아들이었다.



사건 다음날 낮 12시50분쯤. 15살 중학생 아들은 15시간 동안 들었던 잠에서 깼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거실과 방안에 각각 쓰러져있던 엄마와 누나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숨진 모녀를 발견했다. 이불이 덮인 채 발견된 40대 엄마 B씨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고, 화재가 난 방에서 발견된 10대 딸 C양은 타박상과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고 치아 1개가 탈구된 상태였다.



용의자는 이들의 이웃이었던 50대 여성 A씨로 좁혀졌고, 그는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몸에 좋은 주스라고 해서 먹었는데…" 약물 섞인 도라지물
사건 당일 A씨는 손녀와 함께 피해자 집을 찾아와 B씨의 아들 D군에게 '몸에 좋은 주스'라며 도라지물을 권했다. 여기에는 수면유도성분과 향정신성 약물 등 2가지 약물이 섞여있었고, 이를 마신 D군은 15시간 동안 잠들었다.

A씨는 뒤이어 귀가한 C양과 B씨에게도 도라지물을 마시게 했고, 이를 마신 모녀는 의식을 잃었다. 피해자들의 몸에서 나온 약 성분은 A씨가 복용하던 정신과 약과 같은 성분이었고, 이는 A씨의 집에 있던 절구에서도 검출됐다.


A씨가 건넨 도라지물을 마신 아들 D군과 딸 C양은 정신이 혼미해지자 친구들에게 '살려줘', '몸에 좋은 주스라고 해서 먹었는데 너무 어지럽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귀금속 노린 이웃 A씨…의식 되찾은 모녀 살해 혐의
A씨가 B씨 가족들에게 약물을 탄 도라지물을 마시게 한 건 귀금속을 훔치기 위해서였다.

A씨는 금품을 훔치던 중 모녀가 깨어나자 B씨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 뒤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고, C양도 둔기와 휴대전화 등으로 수차례 때린 뒤 호흡기를 막아 숨지게 했다. 또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딸 C양이 있던 방 안에 불을 내 시신 일부를 훼손하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해 글을 읽지 못하는 등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 수입이 없었던 A씨는 2015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으며, 병원비, 월세, 생활비 등 지출 증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A씨는 사위와 둘째딸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않으면 압류, 고소 등을 하겠다는 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A씨는 범행 전 딸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는 빈털터리다. 어디가서 도둑질을 하든지 사람을 죽여서라도 돈을 마련하겠다"는 끔찍한 말을 하기도 했다.

1심 "범행 방법 참혹"→항소심 무기징역 선고…A씨 "아니라고" 고성

부산 고등·지방법원 전경./사진=뉴스1부산 고등·지방법원 전경./사진=뉴스1
검찰은 1심에서 A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지난 4월 A씨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 범행한 것으로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2명의 생명을 빼앗아 한 가정을 파괴했다. 범행 방법이 참혹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며 "그럼에도 범행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만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반성하지 않고 생존한 피해자 아들이 범인인 듯 발언하고,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부인하고 책임을 벗어날 궁리에만 몰두했다"며 "다시는 사회 안전을 위협할 수 없도록 A씨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A씨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범행을 부인했다. A씨는 "B씨 집에 머무는 동안 딸 C양을 못 봤고, 도라지청을 넣은 물에 어떤 약물도 탄 적이 없으며, 모녀를 살해하거나 아들을 다치게 한 사실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제시된 증거 등을 종합해 A씨가 모녀를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지난 16일 부산고법 형사2-3부(부장판사 김대현)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현장에서도 딸 C양의 이불에서 피고인의 DNA가 C양보다 많이 검출됐고, 피고인이 마신 맥주캔을 닦아낸 흔적도 보인다. 피해자들의 집은 방범창이 달려 있고 강제개방 흔적도 없었다"며 "이런 객관적 증거들은 현장에 있었던 피고인이 모녀를 살해했다고 인정하기 충분하다"며 A씨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가만히 서서 선고 내용을 듣던 A씨는 항소 기각 판결이 나오자 법정에서 고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A씨는 재판부를 향해 "그게 무슨 말인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안 했다고요. 아니라고"라며 소리를 지르다가 법원 관계자에 의해 대기실로 끌려나갔다. 이후에도 10여 분간 대기실에서 A씨가 울부짖는 소리가 법정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