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빅히트 뮤직
12년은 숨 가쁘게 흘러갔다. 뷔가 속한 BTS는 아미라는 무시무시한 팬덤의 지지로 세계를 정복하고 멤버들의 군입대와 솔로 앨범 발매를 차례로 치렀다. 물론 멤버 전원의 입대는 아직 멀었지만 솔로 앨범(또는 싱글)은 한 명만 더 내면 마감이었다. 그 마지막 주자가 뷔다. 데뷔 때부터 '비밀 병기'로서 존재를 감춰야 했던 그는 솔로 앨범에선 비슷한 모양새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했다. 뷔의 솔로작 제목은 'Layover'. 환승, 경유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잠시 쉬거나 잠깐 멈춘다는 것으로 이는 지금의 BTS가 당면한 상황이기도 하다. 뷔는 그걸 "최종 목적지 이전 자신을 굳건히 다지는 의미"로 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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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멤버의 솔로 앨범이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물리적인 창작과 제작 일은 타인들에게 맡긴 채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노래와 춤, 이미지만 소화한 앨범, 아니면 본인이 음악 등 디테일까지 챙기고 관여하며 결과물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앨범. 프리스타일을 선택한 'Slow Dancing'의 안무나 같은 곡의 긴 플루트 솔로 같은 데서 나는 뷔의 앨범이 후자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크레디트를 보니 뷔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쳇 베이커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트럼펫을 배우기도 한 적극성이, '풍경'과 'Blue & Grey' 등에서 증명한 자작곡 실력이 정작 그런 태도와 실력을 더 발휘해야 할 자신의 앨범에선 휘발되어버린 이 상황이 나는 조금 의아했다. 적어도 겉으로만 봤을 땐 뷔의 앨범에서 뷔의 존재감은 재킷 전면을 가득 채운 연탄이의 픽셀 이미지보다 미미해 보였다. 그는 왜 그랬을까.
12년 전 뷔가 처음 만난 "음악 좋아하고 힙합 하던" BTS의 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솔로 앨범을 진정한 의미에서 솔로 앨범으로 남기고 각자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자기 작품의 창작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얹지 못한 건 정국이 유일했지만 그나마 정국의 'Seven'은 싱글이었기에 다음을 기대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 면에선 같은 싱글이었음에도 작사, 작곡자 명단에 본인을 올린 진의 'The Astronaut'는 따로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오랜 예고 끝에 겨우 EP를 내놓은 뷔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아꼈다. 할 줄 아는데 하지 않은 그의 이번 소극성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차라리 앞 노래의 피아노 버전으로 채운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서 자신의 장기인 색소폰이라도 한 번 불었다면 좋았을 법했다. 혹 뷔가 부른 민희진의 그늘이 되레 뷔의 가능성을 가려버린 건 아닌지(크레디트만 보면 바나(BANA)가 제작한 XXX의 앨범이라 해도 믿길 정도다). 복고를 복기한 'Love Me Again'의 뮤직비디오가 과하고 어색하게 느껴진 건 단순히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