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관악구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2023 서울시 장기기증의날 행사에서 이석우씨(85)가 감사패를 받고 있다. /사진=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2020년 8월 3일 늦은 오후.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이상진씨(당시 50세)는 아버지께 일찍 잔다고 인사하고 방에 들어갔다. 그게 이석우씨(85)가 막내아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에도 아들이 일어나지 않자 이씨는 119에 신고했다. 뇌졸중이었다. 가까운 병원에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고 대학병원에선 환자를 받을 여유가 없다고 했다. 세번째 병원에서 아들은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석우씨는 "우리 애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착해서 '좋은일을 한다', '여러 사람을 살린다'는 한 생각으로 장기기증을 결정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석우씨(85)의 셋째아들 고(故) 이상진씨(향년 50세). 이상진씨 뇌사판정 이후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이상진씨는 6명에게 새삶을 선물했다. /사진=이석우씨 제공
이씨는 지난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주관한 행사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이씨는 행사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90여명을 만나 아픔을 나눴다. 이씨는 "유가족협의회 회장의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가 마지막 인사였다고 한다"며 "그 친구가 여러 사람에게 새 삶을 주고 떠났지만 참 딱하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김희연씨(53)는 장기를 기증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고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행사에서 전시된 자신의 사진 앞에 김씨가 서 있다. /사진=김희연씨 제공
김씨는 13살이던 1983년 소아당뇨 판정을 받았다. 30년간 투병 끝에 김씨의 신장 기능은 정상 신장의 10% 이하로 떨어졌다. 췌장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투석을 받기 시작했고 김씨의 고통을 보다 못한 친언니가 동생에게 신장을 이식해주기로 했다. 수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뇌사 판정자가 췌장을 이식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한번에 수술을 끝내야 했다.
지난 3월 김희연씨(53)는 장기를 기증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고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드럼스틱을 들고 있는 김씨사진. /사진=김희연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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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장기를 기증받고 30년간의 투병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김씨는 30년간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았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인슐린 주사액을 냉장보관하기 위해 보온병과 일회용 주사기, 알콜솜을 챙겨야 했다. 19살 때 입사한 이후로는 식단관리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2개씩 쌌다. 회사에서도 혈당이 떨어진다 싶으면 하루에도 12번씩 손끝을 바늘로 찔러 혈당수치를 재야 했다. 혈당에 문제가 생기면 화장실로 달려가 스스로 팔 안쪽에 인슐린 주사를 놨다. 이식수술을 받기 한 달 전부터는 격일로 하루 4시간씩 투석을 받았다.
연도별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수와 연령대별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수./자료=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405명으로 2012년 이후 가장 적었다. 이식대기자는 지난해 말 기준 4만9765명으로 3년 전 3만7217명보다 1만2500명이 늘었다. 매일 7.9명의 환자가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