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터게이트' 호텔서 도청기 설치하던 남성들…재선된 닉슨사건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72년 6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근무하던 경비원은 새벽 2시30분쯤 건물 가장 아래쪽의 구석진 곳과 주차장 사이 문 위에 테이프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측근의 이름이 언급됐음에도 닉슨 대통령 측은 "범인들은 절도범에 불과하다"며 백악관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고, 공화당의 닉슨은 같은 해 11월 압도적인 표 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증거 제출 요구하는 검사에 보복…닉슨에 등 돌린 여론워싱턴 포스트의 신입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쳤다. 정체불명의 내부 고발자 '딥 스로트'(Deep Throat)는 우드워드에게 비밀 정보를 알려줬다.
체포된 남성 중에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로부터 돈을 받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워터게이트 사건이 백악관과 연루돼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1973년 5월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와 상원 조사위원회는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행정 특권을 이유로 거절했다. 콕스 특별검사는 백악관의 보복으로 파면됐다.
이는 오히려 미국 여론이 닉슨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게 만든 원인이 됐다. 닉슨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기자 수백명 앞에서 "난 사기꾼이 아니다"(I am not a crook)라고 주장했지만, 악화한 여론은 회복되지 못했다.
美 최초로 대통령직 사임한 닉슨…'딥 스로트' 정체는닉슨 대통령 측근들은 조사 방해 혐의로 기소됐고, 하원 사법위원회에서는 탄핵 결의가 가결됐다. 대법원이 닉슨 대통령의 특권을 무효로 하면서 녹음테이프 등 증거도 여럿 나왔다.
녹음테이프에는 닉슨 대통령이 CIA 국장에게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방해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있었다. 궁지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자신이 사건 은폐에 관여했으며 FBI에 "수사 범위를 백악관까지 확대하지 말라"는 명령도 내렸다고 털어놨다.
탄핵 직전까지 몰린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8일 TV 연설에서 이튿날 정오에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것이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는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닉슨의 사임 후에는 그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포드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8일 닉슨의 재임 기간 중 발생한 범죄에 대한 사면 조치를 내렸다. 이후 미국 정부의 국제 문제에 대한 자문에 조언을 해오던 닉슨은 1994년 향년 81세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우드워드 기자는 펠트와의 이야기를 담은 저서 '시크릿 맨'(2005)에서 이같이 말했다. "펠트는 알았고 나는 몰랐다. 난 허둥대며 위험하기 짝이 없이 길을 벗어나 넘어지기 일쑤였고, 그는 지혜를 발휘해 배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