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에서 송아지 볼 수 있나요?" 1020 마약 중독 급증…벗어나려면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09.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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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마약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 이미지. /그림=게티이미지뱅크마약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 이미지. /그림=게티이미지뱅크


아이스·캔디·개살구·생눈깔·농구공… 전혀 관련성 없어 보이는 이들 용어는 놀랍게도 SNS에서 사용되는 마약의 은어다. 마약을 판매하는 곳을 개판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머핀(헤로인)·송아지(코카인)·향신료(대마초)·복숭아(엑스터시) 등 마약 종류별 은어도 따로 있을 정도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일어난 경찰관 추락 사망 사건이 '집단 마약' 혐의로 수사가 확대됐다. 또 배우 유아인은 마약을 7종 이상 상습 투여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이처럼 국내에서 마약을 불법 투여하는 '마약류 사범'의 확산세가 심상찮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년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국내 마약류 범죄 통계에서 '드러나지 않는 비율'이 28.57배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마약 범죄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마약 왕국'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마약류란, 마약·향정신성의약품·대마의 통칭으로 '마약류 관리에 의한 법률' 시행령에서 정한 성분이 이에 해당한다. △대마 △코카인 △헤로인 △필로폰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 △MDMA(메틸렌디옥시메스암페타민, 일명 '엑스터시') 등이 있다. 이런 물질은 신경계에서 일시적으로 쾌감·흥분을 유발하거나 현실 감각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마약의 이런 효과는 '잠깐뿐'이다. 장기적으로 상습 투여하면 중독·의존성을 일으키며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몸이 마약에 중독되는 기전은 뭘까?



마약을 상습적으로 투여하는 습관은 의학에서 '약물 남용'에 해당한다. 이런 약물 남용을 이끄는 상황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첫째, 호기심에 따른 실험적 사용 단계다. "그거 하면 좋아?", "너도 해볼래?"라는 식의 대화가 오가면서 마약에 손을 댄다. 둘째, 상황적 사용 단계다. 클럽 같은 특정 장소에 갔을 때 구성원들 사이에서 마약을 일삼을 때 그 무리의 분위기에 이끌려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다. 셋째, 유희적 사용 단계다. 취미 삼아, 정기적으로 사용하며 약물 자체에 집중한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웅구 교수는 "이런 단계까지 진행하면 약물을 도저히 끊기 어려운 단계로 진입한다"고 말했다. 그 단계가 바로 넷째, 의존적 사용 단계다. 마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강박적 실망감을 느끼고 금단 증상도 나타나는 시기다. 이땐 자신의 의지로 마약을 끊을 수 없다.

[인천공항=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인천공항 관세청 직원과 마약 탐지견이 2일 오전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공항 수화물을 확인하고 있다. 2023.09.02.[인천공항=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인천공항 관세청 직원과 마약 탐지견이 2일 오전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공항 수화물을 확인하고 있다. 2023.09.02.

소프트 드럭인 대마초, 손 대면 하드 드럭에도 '기웃'
마약은 중독성이 강한 '하드 드럭'과 중독성이 비교적 약한 '소프트 드럭'으로 나뉜다. 필로폰·헤로인은 하드 드럭에, 대마초는 소프트 드럭에 해당한다. 미국·태국이 대마초를 합법화한 근거는 '소프트 드럭은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반면 헤로인 같은 하드 드럭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합법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소프트 드럭은 의학적으로 안전할까? 강웅구 교수는 "대마초 흡연 후 운전하면 술을 마시고 운전할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또 소프트 드럭에 한 번 빠지면 헤로인 같은 하드 드럭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강 교수는 "하드 드럭은 단 한 번만 주사로 맞아도 바로 중독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층'에서의 마약류 범죄가 급증했다는 현실이다. 2013년 10~20대의 마약류 범죄 비중이 전체 마약류 범죄 비중의 10.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34.2%로 9년 새 3배 이상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마약에 일찍 손을 댈수록 더 오랜 기간 중독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강 교수는 "청소년기에 대마초를 흡연하면 성년이 된 후 환청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개판에서 송아지 볼 수 있나요?" 1020 마약 중독 급증…벗어나려면
마약 중독은 마약이 주는 효과에 대해 몸에서 강력한 학습이 일어난 상태다. '마녀들이 하늘을 날 때 사용한다'는 전설이 있는 벨라돈나는 극소량만 투여해도 하늘을 나는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마약 중독은 뇌의 도파민성 회로인 '중뇌 피질 변연계'에 영향을 미쳐 도파민계를 활성화한다. 도파민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로 사고력과 쾌감에 주로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마약은 도파민을 강제로 배출해 순간적인 쾌감을 맛보게 한다. 도파민이 순간 급증하면 쾌감을 느끼지만, 과도하게 많아지면 피해망상, 관계망상, 환청 등 조현병 같은 증상을 야기한다. 또 마약은 도파민을 파괴해 도파민 결핍을 유도한다.

도파민 활성도가 높아진 마약 중독자는 보상(마약)을 찾아다니고 획득하려는 '욕망기'를 거쳐 실제로 마약을 찾아내 소비하는 '완료기'를 거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완료기를 경험한 사람은 또다시 보상을 찾아다니는 욕망기로 이행한다"며 "마약으로 인해 도파민이 활성화하면서 욕망기와 완료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점차 벗어나기 힘들어진다"고 언급했다.

히틀러처럼 우울감과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마약에 더 쉽게 손을 대는 경향이 있고, 이들이 마약에 빠지면 또 다른 마약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예컨대 우울한 사람이 필로폰에 중독되면 코카인을 찾아 중독될 위험이 매우 커진다는 것이다.

마약을 '단기간' 투여하면 뇌 구조 이상은 없지만, 마약 종류에 따라 호흡이 억제되거나(아편계) 살이 찌는(대마초) 등 증상이 나타난다. 마약을 끊지 못해 장기간 투여하면 뇌가 치매 환자처럼 쪼그라드는 등 구조적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 1회 투여자보다 다회 투여자의 마약 중독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 뇌의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마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다. 손대지 말아야 하지만, 한 번 손댔다면 더는 손대지 말고 빠르게 치료받아야 하는 이유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유아인은 프로포폴, 대마, 코카인, 케타민 등의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 19일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유아인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2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아인과 공범으로 지목된 미대 출신 작가 A씨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2023.05.24 /사진=김창현 기자 chmt@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유아인은 프로포폴, 대마, 코카인, 케타민 등의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 19일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유아인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2일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아인과 공범으로 지목된 미대 출신 작가 A씨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2023.05.24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손댔다면 반복 투여 말고 치료부터 받아야
가장 좋은 건 마약을 아예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실수로 마약을 투여해 중독됐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가장 기본적인 치료는 '약물 치료'다. 이땐 중독된 마약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물이 사용된다. 필로폰을 주사해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약물이 그 예다.

또는 중독된 마약과 비슷하지만 안전한 약물을 미리 주는 방법도 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약물 중독의 목표는 단순히 약물을 중단시키는 게 아니라, 안전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약 중독에서 완벽히 벗어나려면 약물 치료만으로는 안 된다. 정신 사회적 치료, 인지행동치료, 재활치료 등을 병행해야 한다. 예컨대 인지행동치료에선 마약의 단점을 떠올리는 훈련을 반복해 뇌가 마약을 싫어하도록 돕는다. 마치 담배와 폐암을 연상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편계 마약의 효과를 차단하는 날트렉손의 경우 마약을 끊고 금단증상이 모두 지나간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금단증상이나 공존하는 정신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항불안제, 항우울제, 향정신병 약물, 기분안정제 등의 정신과 약물이 사용될 수 있다.

마약을 찾게 된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노력과 함께 심리검사, 중독 상담, 단약 동기 프로그램 등이 정신 사회적 치료의 예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는 "마약 중독 치료법도 진화해 최근엔 마약 중독자의 인지행동을 치료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떠오른다"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리셋-오(reSET-O)라는 소프트웨어 앱을 디지털 치료제로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마약을 끊기 힘들다며, 마약을 끊어낼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조성도 병행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강 교수는 "약물(마약)을 못 하도록 감시하고 강제하는 것보다는 약물이 생각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약물 남용하지 않아도 불편감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약물 중독을 치료하는 궁극적인 방법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성원 교수도 "이미 1960~70년대 마약과의 전쟁만으로는 마약류 확산세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미국이 경험한 바 있다"며 "법적 조치와 함께 치료·재활이 제공되지 않으면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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