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출발하는 한경협은 이익단체를 넘어 재계 구심점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로 변모를 선언했다. 힘을 키우고 결속력을 높여 우리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을 타개하겠다는 명분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대의명분일 뿐 다양한 계산의 과정과 나름의 배경에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글로벌 마당발로 통하는 류 회장은 특히 미국에서 영향력이 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유력 정재계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며 경제와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한미 정상회담 개최는 물론 미국과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정치·외교가에서 류 회장을 찾아 조언과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잦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로 그는 1년 중 상당기간을 미국에서 거주한다고 한다.
친미노선을 걷는 현 정부의 스탠스를 감안할 때 류 회장의 존재감이 더욱 커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결과적으로 류 회장은 풍산의 사업적 네트워크를 넘어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다양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를 감안할 때 새 출발이란 명분을 내건 '류진호(號)' 전경련과 계속 거리를 두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류 회장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발휘할 수 있는 힘의 결과란 얘기다.
이를 네거티브하게 정경유착의 고리로 몰고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 이 역시 공격을 위한 진부한 프레임이다. 정경유착의 리스크 자체를 부인할 순 없지만 그게 두려워 '정경분리'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비도덕적, 불법 뒷거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한층 매서워졌고 누군가 권력을 믿고 호가호위하는 데 대해서도 내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누군가 또는 어떤 기업이 은밀하게 정경유착의 압력이나 유혹에 빠져들 수 있지만 이젠 공개된 협조 내지는 거래가 필수인 만큼 정경유착이나 정경분리가 아닌 정치와 경제, 외교를 잇는 오픈된 '고리' 역할도 필요하다. 정치가 경제를 돕고 경제가 정치를 돕는 것을 무작정 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 대신 매서운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면 된다.이진우 더벨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