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간판 다닥다닥 그 동네…"이런, 짱깨" 이 말 사라졌지만

머니투데이 대구=최지은 기자, 정세진 기자, 김지성 기자 2023.09.04 08:00
글자크기

[MT리포트]이방인들이 온다(上)

편집자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25명 가운데 1명은 외국인이라는 얘기다. 인구 감소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인력을 유치해야 할 필요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에서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잡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외국인을 단순한 이방인이 아닌 정을 나눌 이웃사촌으로 맞을 준비가 돼 있는지 점검한다.

이슬람 기도실 앞 '돼지머리'…"사원 건립 안 돼" 긴 싸움 이유는
①[르포]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 두고 갈등 폭발…당사자들이 말한 해법은

경북대 캠퍼스 서문과 불과 도보 5분 떨어진 이슬람 기도실 인근에는 경북대로 유학하러 온 외국인 학생이 150명가량 거주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도다. 2014년 경북대 캠퍼스 서문 부근에 먼저 정착한 무슬림 유학생들이 현재 기도실로 사용 중인 주택을 매입해 7년간 사용했다. 이 기도실 바로 옆에 모스크를 올린 이슬람 사원이 지어질 예정이다. 기도 시간에 모여 기도하는 이슬람교도들./사진=최지은 기자 경북대 캠퍼스 서문과 불과 도보 5분 떨어진 이슬람 기도실 인근에는 경북대로 유학하러 온 외국인 학생이 150명가량 거주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도다. 2014년 경북대 캠퍼스 서문 부근에 먼저 정착한 무슬림 유학생들이 현재 기도실로 사용 중인 주택을 매입해 7년간 사용했다. 이 기도실 바로 옆에 모스크를 올린 이슬람 사원이 지어질 예정이다. 기도 시간에 모여 기도하는 이슬람교도들./사진=최지은 기자


#. 남성의 짧은 헛기침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이슬람 전통 모자 '쿠피'를 쓴 남성들은 한 방향으로 나란히 선 뒤 인도자의 소리에 따라 기도 자세를 바꿨다. 지난달 31일 대구 북구 대현동의 이슬람 기도실의 모습이다.



기도실 안 전자 시계에는 새벽 5시, 오후 12시45분, 오후 6시10분, 오후 7시32분, 오후 9시15분이 표시돼 있었다. 이슬람교도들의 하루 5번 기도 시간이다. 기도 시간은 해의 움직임에 따라 매일 조금씩 바뀐다. 기도실의 분위기는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경북대 캠퍼스 서문과에서 도보 5분 떨어진 기도실 인근에는 경북대로 유학하러 온 외국인 학생이 150명가량 거주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도다. 2014년 경북대 캠퍼스 서문 부근에 먼저 정착한 무슬림 유학생들이 현재 기도실로 사용 중인 주택을 매입해 7년간 사용했다. 이 기도실 바로 옆에 모스크를 올린 이슬람 사원이 지어질 예정이다.



기도실을 나오자 밖에는 커다란 업소용 냉장고에 돼지 대가리 3개가 놓여있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들에게 항의하려 주민들이 마련해 둔 것이다. 골목을 따라 "돈보다 양심! 법 이전에 양심! 종교시설보다 양심!"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부지는 주택 11곳으로 둘러싸여 있다. 숫자로 표시된 주택 위치./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부지는 주택 11곳으로 둘러싸여 있다. 숫자로 표시된 주택 위치./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은 213만4569명에 달한다. 국내 총인구의 4.1%에 이른다. 2017년 176만여명에서 37만여명 증가했고,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되면서 증가세는 가팔라질 전망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늘어나면서 원주민들과 갈등을 겪는 사례도 불거지고 있다. 이슬람사원 건립으로 마찰을 빚는 대현동이 대표적이다. 대현동 이슬람사원 부지는 주택 11곳으로 둘러싸여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대문 5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주민들이 이슬람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골목에 거주하는 주민 김모씨(90)는 사원 건립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을 우려했다. 김씨는 "집에서 보면 30명 정도 기도실에 모여 있는 게 보인다"며 "사원이 지어지면 더 많은 사람이 모일 텐데 그게 걱정"이라고 밝혔다.

인근에 사는 다른 주민 역시 "개인적으로 주택 한복판에 지어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좁은 골목에 여러 대문이 몰려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 많은데 사원 건립으로 유동 인구가 늘어나고 특히나 그 사람들이 외국인이면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머니투데이 기자가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현장을 찾았다. 이슬람 사원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특성에 빗대 돼지머리 냉장고를 설치했다./사진=최지은 기자  지난달 31일 머니투데이 기자가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현장을 찾았다. 이슬람 사원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특성에 빗대 돼지머리 냉장고를 설치했다./사진=최지은 기자
주택 밀집 지역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종교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우려한 주민들이 탄원서를 내고 대법원까지 법정 공방을 벌였다. 법원이 이슬람교도들의 손을 들어주며 지난해 8월부터 공사가 재개됐지만 공사가 언제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주민들의 지속적인 반발에 일할 인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기도를 마치고 나온 한 무슬림은 "2014년부터 계속 이곳에서 기도를 해왔지만 그동안은 별다른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공사 자재를 들여올 때도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힌다. 공사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도 이슬람사원 건립 현장의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다. 출입문 앞에는 건물 증축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법원의 공시문이 붙어있었다.

이 골목에서 만난 파키스탄 국적의 말릭씨 역시 기도실 인근에 거주하는 무슬림이다. 앞서 한국에 정착한 같은 국적 친구의 소개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는 "미국에서 보면 같은 인종끼리 마을을 형성하고 살곤 하는데 이곳도 마찬가지"라며 우리에게 이슬람 사원은 일종의 커뮤니티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두고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말릭씨는 "다섯 손가락이 다 같을 수 없듯이 한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될 수 없다"면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해결책으로 꼽았다.

그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한국인인데 항상 우리의 안부를 묻고 할랄 음식을 서로 나눠 먹기도 한다"며 "이 인근의 몇몇 식당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들을 위한 요리를 해준다. 이렇게 서로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의 의견도 같았다. 한 주민은 "실제로 경험해본 외국인 유학생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며 "서로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싶다"고 밝혔다.

무슨 일 터졌다 하면 "조선족 짓" 화살 향하는데…실제 범죄율은
②대림동 한국 주민들 "중국어 간판 많을 뿐, 위험하다고 못 느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지난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여긴 한국식당이 없어 밥 먹을 곳을 찾기가 어려워."

60대 남성 이모씨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섰다. 친구들과 점심때 이곳을 찾았지만 내국인 이씨에게 대림은 낯설다. 중국어로 된 간판을 읽기도 어렵고, 한국어로 안내된 메뉴도 생소하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은 외국인은 늘고 내국인은 줄고 있는 동네다. 한국에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이 곳에 터잡고 살아간다. 대림동 대동초등학교는 2018년에 이미 신입생 10명 중 8명이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채워졌다.

대림동에서 만난 중국 동포들은 한국에서 겪는 일상에서의 차별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대놓고 '중국놈, 짱깨' 등의 말을 들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까지는 없다고 한다.

2004년 한국에 들어와 서강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김용선 한중무역협회 대표(46)는 "10년 동안 지켜본 결과 사회적 차별의 강도는 낮아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치구별 중국 동포 거소 신고 현황. 2010년 서울시에 거소 신고한 중국 동포는 1만3171명이었다. 2022년에는 10만 5931명으로 크게 늘었다. 서울시 자치구별 중국 동포 거소 신고 현황. 2010년 서울시에 거소 신고한 중국 동포는 1만3171명이었다. 2022년에는 10만 5931명으로 크게 늘었다.
남명자 한국범죄퇴치운동본부 서울 영등포지회장은 "예전에는 중국 동포들이 임금체불이나 직장 내 성추행 등의 상담을 요구하는 건수가 많았다"면서 "직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중국놈들이 그랬지' '중국놈들이 그럴 줄 알았어"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을 상대로 한 중국 동포들의 상담 건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몇 건이라고 말로 할 수는 없는데 차별이 줄고 있는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남씨 역시 중국 동포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20년 이상 생활하면서 직장과 학교 등에서 발생하는 동포들의 어려움을 상담해 주고 있다.

지난해 기준 재한 중국 동포 10만6000여명이 서울에 거소 신고를 했다. 이중 70%에 달하는 7만3877명이 구로·영등포·금천·관악구 등 서남부에 몰려산다. 2019년 기준 영등포구 대림2동에 등록된 외국인주민은 1만2926명이다. 대림 2동 인구의 대략 절반이 중국 동포다.

고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중국 동포 이모씨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어중간한 나이에 한국에 오면 대동초나 주변에 중국인 비중이 높은 학교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한국 상황이 농촌과 건설현장, 요식업장에 조선족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데 자녀들이 적응할 수 있는 학교를 찾다 보니 몇개 학교에 동포들이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대림동에 거주하는 한국 주민들 사이에서는 중국 동포들과의 공존에 적응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림동에서 부동산공인중개 사무소를 운영 중인 장모씨는 "예전부터 살던 주민들은 치안에 대한 별다른 불안감이 없다"고 말했다. 대림동의 한 오피스텔에 2개월째 거주 중인 직장인 김모씨(28)는 "간판이 중국어로 된 게 많을 뿐이고 딱히 위험하거나 역차별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때 피의자가 조선족도 아닌데 조선족이라는 소문이 먼저 돌더라. 강력 사건 범죄자는 조선족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조선족의 범죄율이 높다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전체 범죄율은 오히려 내국인에 비해 낮다. 지난 11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을 보면 2020년 중국인의 검거인원지수(인구 10만명당 검거인원)는 1653명이다. 내국인의 검거인원지수가 2815명인 것에 비하면 약 58% 수준이다.

대림2동에서 행정사로 일하는 박모씨는 "동포들의 최대 관심사는 법적 지위와 체류 보장"이라면서 "동포들은 혼자 오는 게 아니고 한국에서 부모를 모시고 자식도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에 영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형사사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굉장히 조심한다"고 말했다.

김용선 한중무역협회 대표는 "차별이 점차 줄어드는 동안 대림에는 다른 차이나타운과 달리 카페가 많이 생겼다"며 "탕후루나 마라탕을 먹으러 한국 젊은이들이 찾아오면서 현지화되고 있다는 증거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도시에서나 이주민과의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 조선족이 아니라 어떤 이주민이 모여 살았어도 겪었을 갈등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어로 된 간판을 단 상점이 몰려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재한 중국동포들은 차별은 줄었지만 여전히 '한국인'과 자신들 사이엔 엄격한 구분이 있다고 말한다. 귀화 또는 국적회복 등 절차에 따라 법적으로 한국인이 돼도 구분짓기는 여전하다.

중국 동포를 대상으로 한 언론사인 신화일보를 운영하는 조명권 대표(50)는 "모국이라고 해서 연변에서 한국에 들어온 지 20년이 됐다"며 "국적도 한국인이지만 아직도 말투를 듣고 중국동포냐, 조선족이냐 심지어 중국인이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의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화순에 살다 일제강점기에 압록강을 건넜다.

김관용 재한중국동포 애심간병인총연합회 회장은 "중국동포사회가 한국 사회로부터 아무런 차별없이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순 없다고 본다"면서도 "여전히 재미동포와 재일동포와는 다른 동포로 대우한다. 사회적으로 반중정서가 높아질 때면 한족이 아닌 조선족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동포 3~4세대들은 한국말도 아주 잘하고 중국과 별 인연이 없다"면서 "그럼에도 차별을 받을까 봐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하는데 오히려 중국에선 해외거주 중국인은 모두 화인, 화교로 부르며 품으려고 한다"고 했다.

IT기업 다니는데 "한국 시집 왔냐"…이민자들이 본 한국 현실
③"한국 체류하려면 비자와의 전쟁 치러야" 이민자들이 느끼는 한국의 문제점

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응우옌 반 후이씨(가명·29)가 비자 갱신을 위해 필요한 서류 수십장을 바닥에 펼쳐놓은 모습. /사진제공=본인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응우옌 반 후이씨(가명·29)가 비자 갱신을 위해 필요한 서류 수십장을 바닥에 펼쳐놓은 모습. /사진제공=본인
"한국 사는 외국인들은 자고 일어나면 비자 걱정입니다. 전문직이든 비전문직이든 비자로 골치 아픈 건 마찬가지죠."

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응우옌 반 후이씨(가명·29)의 한국살이는 '비자와의 전쟁'으로 요약된다. 응우옌씨는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2017년 9월 서울 소재 대학원 3곳에 동시 합격했지만 대학마다 제각각인 재정 증명 문제로 비자가 제때 나오지 않아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6개월을 기다려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려니 다시 서류의 벽에 부딪혔다. 담당 교수와 학교 행정실의 허가가 필요했고 범죄경력 조회서를 제출해야 했다. 자국인 베트남에서 발급받고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한 뒤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의 인증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도 일주일에 최대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어 생활비를 충당하기 부족했다.

취업 후에도 비자 문제는 이어졌다. 유망산업 종사자, 전문직 종사자 등이 신청할 수 있는 점수제 거주 비자(F-2)로 변경하려고 하니 채워야 하는 소득 기준이 너무 높았다. 평가 항목 중 나이, 학력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은 가장 높은 점수를 채웠다. 결국 연간 소득에서 고점을 받아야 하는데 외국인 신분으로 연봉 3000만원 이상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응우옌씨는 "한국 사람들도 연봉 3000만원 이상 받기 어렵지 않냐"며 "현행 비자 제도는 조건이 까다로울뿐더러 갱신 기간도 짧아서 한국에 사는 5년 동안 늘 비자 문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쯔엉 투이 쩐씨(가명·31)는 한국에 있는 베트남 IT 기업 인사팀에서 9년째 일하며 이 같은 사례를 숱하게 접했다고 한다. 쯔엉씨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발급되는 특정활동 비자(E-7)를 받으려면 전년도 수입이 한국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80% 이상을 충족해야 하고 이는 약 3400만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직 비자(D-10)를 6개월마다 갱신하며 살아야 한다"고 밝혔다.

거주(F-2) 비자 심사기준.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거주(F-2) 비자 심사기준.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글로벌 IT 기업 다니는데 "한국 남자한테 시집 왔어?"

쯔엉씨는 한국에서 유학 후 베트남 사람과 결혼해 경기도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택시를 탈 때마다 "한국 남자 좋지?", "한국으로 시집왔구나?"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일하는 비전문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시선은 더 따갑다. 2019년부터 대구 한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인 세라씨는(가명·24) "한국 사람들은 저개발 국가 노동자를 선진국 출신 외국인들과 달리 대우한다"며 "미국인 친구들은 한국이 너무 살기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생김새로 차별받기도 하고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살이 5년 차인 필리핀인 로니얼씨(31)는 "제주도에서 일할 때 사장님이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돌아다녔는데 하루는 나에게 '너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집어던졌다"며 "나는 일을 하러 왔으니 일이 힘든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상처가 컸다"고 말했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의 최저임금을 줄 필요 없다는 주장이나 저렴한 임금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 논의 등이 이 같은 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쯔엉씨는 "베트남 사람이라고 해서 일을 덜 하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돈을 벌면 한국 물가로 생활해야 하는데 최저임금이 과다하는 주장은 잘못됐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또한 100만원에 입국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국적을 차별하는 제도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4월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 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목에 쇠사슬을 감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 4월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 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목에 쇠사슬을 감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그래도 한국 좋아 살고 싶어"…제도·인식 개선 목소리

외국인 노동자들은 자국 대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지만 주변 여러 나라 중에서도 한국을 택한 이유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 문화 등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녹록지 않은 한국살이지만 이들은 한국에 계속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세라씨는 "필리핀보다 한국 임금이 4~5배 정도 높기도 하지만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 와 상처받는 일이 많았어도 주변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늘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인 응우옌씨는 "한국에 남겠다는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비자 발급에 까다로운 입장도 이해가 되고 나는 한국살이를 포기하지 않겠지만 비자 갱신 기간 등 조건이 조금이라도 완화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쯔엉씨도 "한국 사는 외국인도 세금 낼 거 다 내는데 주택청약 등 혜택에서 외국인은 늘 배제된다"며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한국과 같은 저출산 국가는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 미래 아닌 현재이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한국에 살며 귀화한 아제르바이잔 출신 니하트씨 의견도 비슷했다. 외국인을 돕는 강남글로벌빌리지센터 센터장으로 일하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마인드 때문에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는 시작을 늦게 한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국경이 모호해지는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열린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니하트씨는 또 "한국은 좁고 수출 지향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들어와서 해줄 수 있는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며 "외국인을 더 많이 받아들여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외국인이 적응할 수 있는 국제학교 등의 시스템과 환경을 갖추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