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밀수 - 對 중국·러시아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

머니투데이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 2023.09.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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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Tech Powers]'배터리 전쟁' 저자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고정 칼럼
②반도체 밀수 -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

반도체 밀수 - 對 중국·러시아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


넷플릭스는 아직 반도체 밀수꾼에 관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제작된다면 '나르코스' 못지않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작은 실리콘 조각의 밀수가 국제 범죄 조직, 정치, 스파이 활동, 막대한 이익, 이국적인 장소와 관련한 심각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세금 피하고 제재 우회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로 밀수되는 반도체




반도체 밀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세 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반도체는 주로 중국과 러시아로 밀수된다. 중국으로의 밀수의 경우,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AI처럼 잠재적으로 군사적 응용이 가능한 기술에서 미국 및 미국의 동맹국과 동일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정교함을 달성하는 것을 막으려는 규제다. 두 번째 이유는 수입 시 필요한 세금을 내지 않음으로써 비용을 아끼고 중국 시장에서 경쟁자 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서다. 러시아의 경우, 제재가 밀수의 주된 이유다. 치명적인 드론과 미사일을 제어하는 반도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유혈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막으려는 제재다.

안타깝게도 이 제재들을 우회하는 건 쉬워 보인다. 특히 제재 우회에 커다란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석유보다 반도체 수입에 더 많은 돈을 쓰곤 했다. 러시아는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반도체가 절실히 필요하다. 밀수 방법 중 하나는 개인 밀수꾼을 고용하는 것이다. 옛날 식으로 '노새' 또는 '개미'라 부르는 이들이다. 이 방식은 본질적으로 숫자 게임이다. 밀수를 시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통과하고, 일부는 검거된다. 통과한 사람들은 검거된 사람들이 일으킨 금전적 손실을 보상한다. 작전의 배후에 있는 주범은 거의 체포되지 않는다.



2022년 12월, 한 여성이 200개가 넘는 인텔 CPU를 뱃속에 넣고 마카오에서 중국 본토로 건너가려다 붙잡혔다. 그녀는 임신한 척했다. 그녀가 실패한 이유는 출산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관원에게 임신 5개월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9개월처럼 보였다. 이로 인해 정밀 검사가 시작됐다. 중국으로의 반도체 밀수는 주로 홍콩·마카오, 그리고 길고 울창한 정글에 걸쳐 있는, 전통적으로 느슨한 중국-베트남 국경에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레이더에 포착되기 어려운 저공비행 드론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등 더 정교한 방법이 사용된다.

두 번째 방법은 세금 대신 수출 통제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 관할권을 경유해 환적하면서 서류 추적을 모호하게 하고 통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수법이 쓰인다. 아르메니아나 중국과 같은 국가에 등록된 회사가 반도체를 수입한 후 러시아로 재수출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결국 중국으로의 모든 반도체 수입이 제한되는 게 아니다. 미사일을 유도하거나 야간 투시 기능을 제공하는 데 사용되는 반도체가 반드시 고급 반도체일 필요도 없다.

이 과정에서 더 이국적인 지역이 종종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화물 운송업체를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몰디브의 에메랄드빛 바다에 있는 항구를 통해 러시아로 5360만 달러(한화 약 707억원)가 넘는 반도체가 운송됐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유럽연합 관할권, 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연합 관할권도 이러한 불법 거래에 가담하고 있다. '디 인사이더'의 보도에 따르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아날로그 디바이스 등 미국 반도체 회사에서 생산한 반도체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핀란드의 회사를 통해 대규모로 러시아에 선적됐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3년 상반기 5억 달러가 넘는 반도체를 수입했다. 러시아 세관 데이터는 현재 기밀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숫자는 제3자 제공업체의 정보를 취합해 얻은 것이다. 이는 우리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일부만을 보고 있음을 나타낸다.


해외에 가상 서버, 자회사 세워 우회도

반도체는 반도체 제조 장비나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화학 물질과 달리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밀수가 쉽다. 최첨단 슈퍼 컴퓨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고급 반도체를 신발 상자 여러 개에 넣어 밀수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기업에게는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제재된 반도체를 사용하는 원격 가상 서버를 해외에서 운영해 그들의 컴퓨팅 파워를 원하는대로 활용할 수 있다. 아니면 해외에 회사나 자회사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제재된 반도체를 사용해 작업할 수 있다. 중국 AI 기업들은 이를 위해 태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국가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휴대폰이나 가전제품과 같은 수입 전자 장비에서 반도체를 수집해 재사용할 수도 있다. 이는 비용이 많이 들고 절박한 방법이지만, 군사 용도로 사용하려는 국가에서는 실행 가능한 방법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월풀 스마트 세탁기와 중국산 신형 아이폰에 접근하는 게 금지되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클라우드 컴퓨팅 접속을 금지하는 법적 조치를 시행하는 것도 어렵다. 설령 법이 마련되더라도 프록시 서비스를 이용하면 쉽게 우회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재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18년부터 중국의 기술적 우위를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심지어 그 이전에도 전략적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미국 반도체 기업을 중국이 인수하는 건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차단해 왔다. 이러한 작업에 도움이 되는 두 가지 법안이 있다.

2018년 4월, 미국 정부는 당시 전 세계 통신 장비 제조업 분야의 글로벌 선두 업체 중 하나였던 ZTE에 제재를 가했다. ZTE는 4G 및 5G 셀룰러 네트워크 인프라를 제공하며 전 세계 시장에서 점차 큰 영역을 차지해왔다. 이 회사는 특히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성공을 거뒀고, 이란도 그 시장 중 하나였다. 문제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반도체 판매에 제재를 가했지만, ZTE의 장비가 미국 기업들이 만든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란에 장비를 판매함으로써 ZTE는 미국 법을 어기게 됐다. 게다가 ZTE는 적발 후에도 이란에 판매를 계속해 합의 조건을 파기하게 됐다. 이로써 미국 정부의 불만이 최초로 일어나게 됐고 제재가 시작됐다. 미국의 반도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ZTE는 몇 달 만에 파산에 가까워졌다.

이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벌이던 분위기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더 엄격한 제재가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2년 10월 도입됐다. 가장 치명적 조치 중 하나는 14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이하 기술용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국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나노미터 수가 낮을수록 반도체는 소형화되고 더 많은 처리 능력을 담을 수 있다. 현재 최첨단은 3nm이며, 대만 TSMC는 곧 가오슝에서 건설 중인 새 공장에서 2nm 반도체를 대량 생산할 예정이다. 14nm와 2nm는 차원이 다르며, 이 제재는 반도체 자급자족에 대한 중국의 야망을 제한한다. AI와 양자 컴퓨팅 발전에 대한 중국의 욕구는 엄청나다. 이건 이해할 만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누구든 먼저 양자 컴퓨팅을 마스터하면 무차별 암호 대입으로 암호화된 통신을 해독할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무차별 암호 대입이란 가능한 모든 비밀번호 후보를 문자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시스템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오늘날의 슈퍼 컴퓨터로 수백 년이 걸리는 이러한 암호 추측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산 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은 계속되고, 반도체는 반도체 제조 장비보다 훨씬 작고 추적하기 훨씬 어렵기 때문에 불법 반도체 거래는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넷플릭스가 나에게 연락해 '나르코스'의 반도체 버전 시나리오를 쓰도록 요청할 것을 기대한다. 그러면 재미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필자 소개: 루카스 베드나르스키(Lukasz Bednarski)는 금융서비스 기업 S&P글로벌에서 리튬 등 배터리 관련 금속을 담당하는 수석 애널리스트다. 하이테크 공급망 전문가이자 전 희토류 금속 거래자이며 '배터리 전쟁:리튬부터 2차 전지까지, 누가 새로운 경제 영토를 차지할 것인가' 등으로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다.

*이 칼럼에서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회사의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필자와는 Twitter에서 @LithiumResearch를 팔로우하거나 [email protected]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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