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저케이블 시장 장악한 유럽 '빅3'와 '안방' 유럽서 경쟁하는 韓 기업 해저케이블은 유럽 기업들이 아직 주도권을 쥐고 있는 몇 안 되는 제조업 분야 중 하나다.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프리즈미안, 프랑스 기업 넥상스, 덴마크에 본사를 둔 NKT 등 '빅3'의 위상이 공고하다. 이 기업들은 2010년대 M&A로 몸집을 불려 과점체제를 한층 더 굳혔다. 프리즈미안은 2011년 네덜란드 전선기업 드라카를 인수한 데 이어 2017년 당시 미국 최대 전선업체 제너럴케이블을 사들여 덩치를 키웠다. NKT도 스위스에 본사를 둔 ABB의 전선사업을 지난 2016년 인수하며 이 분야 세계 최대 기업 중 한 곳으로 부상했다.
해저케이블 시장이 급성장 중이지만 이를 제작부터 시공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 유럽 '빅3'와 LS전선, 일본 스미토모 전기산업 5개 업체 정도다. LS전선에 따르면 각사 사업보고서 종합 시 유럽 3사와 LS전선의 점유율이 약 85%다. 해저 전력케이블은 케이블 제작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집약된 제품이라 그만큼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아서다. 해저의 강한 압력을 견뎌야 해 지중케이블에 비해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고,고장이 나면 복구에 최장 반년이 소요되며 수리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들어 발주처가 요구하는 품질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LS전선은 구미공장에서 1980년대부터 생산했던 지중 초고압케이블 기술을 기반으로 HVAC(초고압교류송전) 해저케이블을 사업화했고, 이후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는 HVDC 해저케이블을 개발했다. 결국 제주 2연계 사업을 수주했고, 이 수주는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마중물이 됐다. 해저케이블 시장에서는 제조 기술과 설계 능력은 물론 제품과 공장에 대한 인증, 수주를 위한 실적이 필요한데 제주 2연계 사업 수주로 이 발판이 마련된 상황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해상풍력 시장이 본격 성장했다. 2013년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인 덴마크 오스테드(당시 동 에너지)가 영국에 짓는 해상풍력 발전단지에 LS전선의 해저케이블을 사용하기로 하며 첫 유럽 지역 공급계약을 맺었다. 2015년에는 미국 첫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해저케이블을 공급하는 계약을 수주했다.
2010년대 후반엔 대만이 적극적으로 해상풍력에 나서며 대만 사업을 LS전선이 장악했다. 오스테드 등 유럽에서 이미 LS전선의 해저케이블을 썼던 주요 개발사들이 대만 프로젝트에서도 LS전선 제품을 선택하면서다. 해저케이블은 한번 생산해 배에 싣는 무게가 약 4000톤에 달해 생산 시설과 가까울수록 운송비용이 적게 든다. 아시아 해상풍력 시장이 커질수록 역내(동해시)에 해저케이블 공장을 보유한 LS전선이 유리한 이유다. 대만 시장 성장과 함께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사업도 2019년 흑자전환했다. 그간 7000억원 이상 들였던 투자가 결실을 맺는 시기에 들어선 것. 박승기 부문장은 "전세계에서 탄소중립 의제가 부상하며 유럽·미국 해상풍력 시장이 커졌고 대만과 한국도 참여하며 흑자전환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한국 해상풍력 시장이 형성되면 이 역시 LS전선에게 유리하다. 특히 새로운 시장인 부유식 해상풍력이 동해 앞바다에 대규모로 조성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그는 "한국에서 부유식 해상풍력 시장이 커지면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 했다.
유럽 해상풍력 케이블 공급부족이 예견된 가운데 생산능력 확충에도 서두르고 있다. LS전선은 지난 5월 수출용 제품 생산을 위해 아시아 최대 규모 HVDC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해저4동)을 완공했고, 지난 10일에는 동해 사업장 해저케이블 생산능력 확대에 1555억원을 더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동해시에만 있는 해저케이블 생산 공장을 유럽·미국에 신설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박 부문장은 유럽·미국 해저케이블 공장 신설에 대해 "아직 확정된 바는 없으나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