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도 20조 쟁였다…위기 체감 기업들, 투자 줄이고 몸 사리기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3.08.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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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상장사 반기보고서 기준 현금성 자산만 총 314조7270억원

삼성전자도 20조 쟁였다…위기 체감 기업들, 투자 줄이고 몸 사리기


올해 상반기 코스피 상장사들이 투자는 크게 줄인 반면 현금은 확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79,200원 ▼500 -0.63%)의 경우 2010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처음으로 투자 집행보다 회수가 많았고 현금은 2배 가량 늘렸다.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인데 장기적으로 기업들의 성장 동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3일 머니투데이가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반기보고서를 공시한 코스피 상장사 중 전년 대비 비교자료가 있는 441개사의 상반기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마이너스(-) 79조796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117조2620억원) 대비 32%(37조4660억원) 감소했다.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기업이 투자에 사용한 현금이 얼마인지를 보여준다. 공장 설비를 확충하거나 부동산 매입, 타법인 지분 투자, 금융상품 투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투자를 위해 현금이 유출되면 음수, 투자를 회수해 현금이 유입되면 양수로 표시한다. 상장사들의 투자활동 현금유출이 줄었다는 건 그만큼 투자 집행을 줄였거나 투자 회수를 많이 했다는 의미다.



투자는 줄어든 반면 현금성 자산은 늘어났다. 코스피 상장사들의 올해 상반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총 314조7270억원으로 전년 대비 28.5%(69조7730억원) 증가했다. 상반기 코스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2.45%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장사들은 현금을 더 확보한 셈이다.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늘린 건 그만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었을뿐만 아니라 소비위축과 경기침체로 인한 실적 감소까지 겹치면서 경영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질때 현금을 미리 확보해 놓는다면 갑작스런 유동성 위기에도 대처할 여력이 생긴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짙어지면서 차환시 발생할 수 있는 조달비용 증가나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기업들이 현금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구조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이 있어야 투자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요인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역대급 침체가 이어지면서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늘리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코스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투자활동과 관련해 지난해 상반기 19조9290억원의 현금 유출이 있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0조원 순유입됐다. 반기 기준 삼성전자의 투자활동 현금흐름이 순유입으로 나타난건 2010년 IFRS를 도입한 이후 처음이다. 연간 기준으로도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번도 투자 집행보다 회수가 더 많았던 적이 없었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단기금융상품에서 43조8800억원을 회수한 영향이 컸다. 장기금융상품은 4조4920억원, 공정가치금융자산(주식)은 3조7510억원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했다. 반면 투자 집행에 해당하는 유형자산의 취득은 29조3740억원으로 전년 대비 45.7% 늘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9조9200억원으로 전년(39조5830억원) 대비 101.9% 증가했다. 지난해 말(49조6810억원) 대비로도 60.9% 늘었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5% 급감하면서 단기금융상품 등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반도체 대장주인 SK하이닉스 (179,900원 ▲4,500 +2.57%)의 상반기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5조3510억원으로 지난해 -9조9290억원 대비 46.1% 감소했다. 반면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4조5460억원에서 올해 6조410억원으로 32.9% 증가했다.

다른 주요 상장사들도 마찬가지다. 2차전지 대표주인 LG에너지솔루션 (383,500원 ▼5,000 -1.29%)은 증설을 통한 생산량 확대를 지속 중인데 올해 상반기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전년 대비 52.4% 감소한 -4조3060억원을 기록했다. LG화학 (397,000원 ▲500 +0.13%) 역시 전년 대비 35.6% 줄어든 -6조8290억원으로 나타났다. 현금성 자산은 LG에너지솔루션이 4조8600억원, LG화학이 6조846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45%, 29.7% 증가했다.

이밖에 카카오 (47,800원 ▼800 -1.65%), CJ (145,500원 ▲12,700 +9.56%), 한국전력 (20,600원 ▼1,200 -5.50%),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45,900원 ▼1,750 -3.67%), 현대제철 (31,700원 ▲250 +0.79%), SK네트웍스 (5,170원 ▲140 +2.78%), 삼성전기 (153,600원 ▼1,000 -0.65%), DB하이텍 (43,100원 ▼250 -0.58%) 등이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늘렸다.

기업들의 이같은 보수적인 경영전략이 리스크 관리에는 효율적이지만 성장성은 오히려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성장을 위해선 투자를 해야 하는데 소극적인 투자 집행으로는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연구위원은 "최근 신용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괜찮은 기업들이 더 보수적으로 부채를 관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려면 재무적으로 건전한 기업들은 보다 적극적인 차입 전략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장 잠재력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투자를 늘리고 있는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2차전지 소재 기업으로 변모 중인 POSCO홀딩스 (401,000원 ▲3,000 +0.75%)의 경우 상반기 투자활동 현금흐름이 -5조5160억원으로 지난해(-1조8370억원)보다 2배 가량 대폭 늘었다. 지난해 투자 현금 순유입이었던 롯데케미칼 (108,600원 ▲1,300 +1.21%)은 올해 4조6020억원을 순집행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 (10,640원 ▲100 +0.95%), SK이노베이션 (111,200원 ▼200 -0.18%), LG전자 (97,500원 ▲4,200 +4.50%), 삼성SDI (429,000원 ▼1,500 -0.35%), 현대모비스 (227,000원 ▲1,000 +0.44%) 등도 전년 대비 투자 집행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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