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이 앞에 있고, 바깥은 더우니 시원한 동물병원에서 기다리라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세상의 문법과는 반대로 가는 공간이, 사람이, 복잡한 세상이지만 어딘가엔 꼭 있다고./사진=들어갈까말까 망설이는 남형도 기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1.jpg/dims/optimize/)
![버스 기다리는 10분…더우니 들어오라던 동물병원[인류애 충전소]](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10.jpg/dims/optimize/)
5분, 7분, 10분, 12분. 버스 번호마다 부여된 저마다의 대기 시간. 짧은 듯 긴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누군가는 민무늬 양산으로, 또 누군가는 길에서 받은 전단지를 부채 삼아서, 또 다른 이는 콘크리트 건물이 만들어낸 그늘로 몸을 숨기며 버텼다. 어떤 방법도 신통치 않을 때, 우연히 뒤를 돌아본 사람이 있었다.
![그 친절함 덕분에, 더위에 취약한 어르신도 아이도 들어와서 시원하게 머물러 갔단다./사진=남형도 기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2.jpg/dims/optimize/)
'폭염! 너무 더워요! 들어와서 잠시 쉬다 가세요!'
'딸랑딸랑딸랑'. 들어감을 알리던 청량한 종소리. 직원(수의테크니션)이 안쪽에서 나와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유리에 붙은 종이 보고 들어왔는데…"라고 말했다. 끝을 얼버무린 건 정말 여기서 쉬어도 괜찮냐는 의구심. 호의를 호의로 바라보기 힘든 불안, 그게 자연스러운 세상. 그걸 깨는 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럼요. 괜찮습니다. 여기 앉으셔서 버스 오는거 보시고 편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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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안은 무척 시원해서 좋았다. 몸은 시원하고 마음은 따뜻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3.jpg/dims/optimize/)
솔솔 닿는 찬 바람에 노곤했던 몸이 풀려왔다. 묵직한 땀방울이 가벼워졌다. 잠깐 쉬는 게 별건가 싶었으나, 막상 누려보니 좋았다. 동물병원 유리창으로 버스가 언제 올지도 훤히 보였다. 쉬다가 마주친, 동물병원 수의사님도 웃으며 말했다.
"바깥에 날 덥지요? 쉬다가 가십시오."
힘든 얼굴로 들어온 '할머니'가 있었다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서울 서대문구 한스동물병원 전경. 올 여름도 폭염으로 무척 더웠었다./사진=남형도 기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4.jpg/dims/optimize/)
형도 : 더우니까 누구나 들어와 잠시 쉬어도 좋다는 가게는 없었거든요. 적어도 제가 살면서 본 것 중에서는요.
재우 : 아, 전혀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요! 여기 저희 선생님께서 훌륭하신 거라서….
신재우 원장은 옆에 있는 직원에게 자꾸 공을 넘겼다. 그에게 대신 몇 가지를 들었다. 매년 했었다는 것, 원장님 아이디어로 시작했단 것도. 그 처음이 궁금했다.
![실은 이 글을 바라보기만 해도 괜찮은 기분이었다. 빡빡한 세상에 흔쾌히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사진=남형도 기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5.jpg/dims/optimize/)
재우 : 아마 폭염이 심해졌던 게 2015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땐 종이를 안 붙였을 것 같은데요. 그 무렵에 할머님께서 몇 번 동물병원에 들어오셨어요.
형도 : 아이고, 밖이 너무 더우셔서 들어오신 걸까요.
재우 : 맞아요. 되게 힘드신 얼굴로 들어오시더라고요. 그래서 물을 드리고 천천히 쉬시라고 했지요. 그때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생수를 밖에 놓아둘까.
형도 : 기다리시는 시간이 어르신들께는 더 길게 느껴졌을 수도요. 그게 계기가 됐겠네요.
재우 : 지나가다가 우연히 경로당에 쓰여 있는 걸 봤어요. 들어와서 쉬다 가라고요. 그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아, 저거 너무 좋다. 근데 왜 우린 안 하고 있지?' 그때부터 들어오셔서 앉아서 쉬다 가시라고 했지요.
어르신들 들어오면 물 꼭 권하고, 다들 "고맙습니다"
![동물병원 손님인 멍멍이와 사진을 찍은 신재우(가명) 한스동물병원 원장님./사진=한스동물병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6.jpg/dims/optimize/)
형도 : 주로 어떤 분들이 많이 들어오실지요.
재우 : 어르신들이랑 여성분들이 많으시고, 아이도 들어오고요. 밖에서 멀뚱멀뚱 (안내 문구를) 보고 계시면, 들어오시라고 하면 또 들어오시고요. 좀 미안해하시기도 하고 그래요.
형도 : 아무래도, 정말 그냥 들어와도 되나 그런 생각은 할 것 같아요.
재우 : 그러니까요. 그래서 마음 같아선, 여기에 뭘 뚫어서 천막 같은 걸 세워서 들어오시기 좋게 해볼까 생각도 있고요(웃음).
![/사진=남형도 기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7.jpg/dims/optimize/)
재우 : 제가 무얼 한 게 없는데, 너무 민망해요. 주로 안에 들어가 있어요. 제가 나오면 부담스러워하실 수 있으니까요. 도망간다니깐요(웃음).
형도 : 밖에서 5분, 10분만 기다려도 더워서 얼마나 힘든데요. 별 게 맞지요.
재우 : 중요한 건 오셔서 물을 꼭 드셔야 하는데요. 제가 어르신들은 되도록 물을 꼭 드려요. 이게 물 한 모금에 쓰러질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요.
더는 동화책이 아닌 세상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별 것 아니라고 손사래쳤으나, 그 힘은 생각보다 강해보였다./사진=인스타그램 화면 캡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8.jpg/dims/optimize/)
형도 : 흉흉하고 각박해졌다고 느끼고 마음이 쪼그라든 세상이긴 하지요. 그래서 더 따뜻합니다.
재우 :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에선 그냥 문 열고 들어가서 물 한 잔 달라고 청했고, 주고 그랬잖아요. 저 어릴 때도 그랬고요. 원래 그런 삶이었었지요.
형도 : 어렸을 땐 그런 느낌이었는데, 커서는 그런 정(精)을 느끼기가 쉽진 않아요.
재우 : 사람들이 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표현이 어려운 걸 거예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못 하는 거지요. 얘기해보면 다들 마음은 많아요.
형도 : 그것도 맞아요. 선의를 선의로만 바라보기엔 어려운 탓도 있겠지요. 여러 일들 때문에요.
재우 : 물도 나눠주려고 했었는데, 고민할 무렵에 강남에서 마약 음료 사건이 터지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분이 우유를 주시는데 쉬이 못 먹겠더라고요. 악행이 하나 생기면 쫙쫙 뻗어 올라서 가지를 치는 거예요. 좋은 일 여러 개가 사라지는 거지요.
형도 : 아무래도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러니 이리 실행하는 마음은 쉬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재우 : 아니오, 쉽습니다. 아주 쉬워요! 이게 어려운 게 이상해요.
![버스정류장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는 신재우(가명) 한스동물병원 원장./사진=한스동물병원](https://thumb.mt.co.kr/06/2023/08/2023082216160069168_9.jpg/dims/optimize/)
형도 : 정말 쉬운 게 맞을까요?
재우 :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십시오! 그리 말씀해주시면, 그걸 보고 더 많이 하실 것 같으니까요.
소나기가 퍼붓고 간 동물병원 밖 버스정류장 의자가 젖어 있었다. 잠시 뒤, 동물병원 수의테크니션 선생님이 나와 물기가 축축한 의자를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제야 앉을 수 있었다.
그 장면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던 그 말이, 돌아가는 길 내내 가슴 어딘가에서 맴돌았다. 참 좋겠다고. 이런 마음만 가득한 세상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