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연인’의 오프닝은 음울하다. 1659년 효종 10년, 사헌부 지평 신이립(하경)이 씻겨서 없었어야 할 사초(史草)에 적힌 이장현이란 사내의 기이한 행적을 쫒는 것으로 시작한다. 선 세자, 소현세자의 곁에서 믿지 못할 행적들을 보였다는 이장현이란 사내. 이장현이란 이름에만 반응하는, 혜민서 깊은 곳에 갇혀 있는 한 광인.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해변에서 비장하게 서 있는 이장현(남궁민)의 모습을 비추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편 이 이야기가 절대 해피엔딩일 수 없음을 예감케 했다.
사진=MBC
1화에서 성균관 유생 연준이 마을 선비들 앞에서 조정이 오랑캐와 싸우는 명나라를 돕기는커녕 오랑캐 와을 달래기 위해 사신을 보내려 한다며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자고 할 때, 이장현이 “오랑캐가 명을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냐”며 조목조목 현실을 따질 때의 모습은 어떻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 북부군을 양키라고 깔보며 승리를 호언장담하던 순진무구한 남부 청년들에게 레드 버틀러가 찬물을 끼얹으며 현실을 짚었던 영화 초반 파티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져온 듯 했다.
사진=MBC
이 시각 인기 뉴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차용한 설정이 ‘복붙’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모티프는 모티프일 뿐. ‘연인’은 3화부터 병자호란을 맞닥뜨리며 표방했던 ‘휴먼역사멜로 드라마’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사실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에 방점이 찍혀 있을 것이라 여겨, 뒷부분 ‘백성들의 생명력’은 적당히 추임새만 넣는 수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천만에. 극중 지극한 현실주의자 장현은 일찌감치 피난을 결정한다. 그랬던 그가 피난을 떠나지 않는 것은 한눈에 반해버린 길채 때문도 있지만, 그에게 마음을 열어준 능군리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큰 몫을 한다. 지위 고하와 상관없이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능군리의 송추할배(정한용)와 그의 아내 이랑할멈(남기애)이 마을 사람들이 무사히 피난을 떠나기 위해 시간을 벌다 오랑캐의 손에 죽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임금을 구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도 송추할배와 이랑할멈을 위해서는 칼을 들 수 있다며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보라. 장현의 이런 면모를 눈여겨본 소현세자의 내관 표언겸(양현민) 또한 “자네가 조선의 사직을 지키는 것에 관심 없다는 걸 아네. 허나 백성들은 불쌍히 여기지”라며 장현의 도움을 요청할 정도다. 현실주의자였으나 뼛속까지 남부 남자였던 레드 버틀러가 스칼렛을 남겨두고 남부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남궁민은 역시 남궁민이다. 오랜만의 사극인 데다, 연령대가 조금 높지 않나 싶은 염려가 있었으나 그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를 납득시킨다. 무려 조선시대에 ‘비혼’과 ‘섬(주저할 섬)’을 외치는 유들유들한 사내지만 행동해야 할 때는 한없이 재빠르면서도 진중한 모습으로 호감을 산다. 5화에서 소현세자(김무준)와 부딪혔으나 아마 볼모의 신세로 심양에 끌려가게 될 소현세자의 든든한 우군이 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과정에서 비쳐줄 다채로운 모습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사진=MBC
이외에도 ‘연인’을 주시해야 할 이유는 많다. 영화 ‘남한산성’ 등 여러 대중매체에서 보아오긴 했으나 척화파 김상헌(최종환)과 주화파 최명길(김태훈)의 대립을 위시로 나라(임금)를 구하고자 하는 연준과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장현의 신념의 차이가 곱씹을 여지를 주고 있다. 앞으로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쟁과 삶을 대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행동과 모습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사극에서, ‘연인’의 결말이 핑크빛 무드일 순 없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조선판 휴먼역사멜로가 빚어낼, 그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