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아니라 6개월"…'약자·사법신뢰' 판결문에 드러난 이균용 철학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성시호 기자 2023.08.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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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통령 22일 차기 대법원장에 이균용 지명

"6월이 아니라 6개월"…'약자·사법신뢰' 판결문에 드러난 이균용 철학


"징역 6월이 아니라 징역 6개월이 올바른 표현이죠."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사진)가 1990년 법관에 임용된 뒤 34년 동안 내놓은 판결문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인권, 사법질서, 대국민 사법서비스에 대한 이 후보자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5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시절 '쉬운 판결문'을 작성하며 화제가 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법원에서는 법조문에 '징역 ○월' 등으로 쓰는 게 관행이었지만 이 후보자는 '○개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법조인이 아니면 '징역 6월'의 의미를 6월 한달 동안 징역형에 처한다거나 6월까지 감옥에 둔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이 후보자는 "법률문장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고 국어문법에도 맞는 쉬운 글이어야 한다"며 국민에게 다가가는 법관의 자세를 중시했다.



사회적 약자와 인권에 대해서는 법의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사법부의 역할에 충실한 판결을 다수 냈다. 2016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때 틱 장애(투레트 증후군)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장애 유형이 아니란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등록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한 게 손에 꼽힌다. 이 후보자는 당시 판결문에서 "틱 장애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행정입법으로 인해 장애인으로 등록을 받을 수 없게 된 이씨는 장애인으로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인정된다"며 "헌법의 평등규정에 위반돼 위법하다"고 밝혔다. 장애인 인권을 대폭 신장하는 판결로 이 후보자는 2021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검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로부터 장애인인권디딤돌상을 수상했다.

201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유죄판결을 내린 것으로 주목받았다. 민중총궐기 집회의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총괄책임자로서 업무상 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판결은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원심 판결대로 확정됐다. 이 판결은 집회·시위 진압에서 국가권력의 책임에 대한 선례를 세우는 한편, 정치적으로도 편향 없는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사기 혐의 무죄에 대해 형사보상 판결을 내렸다. 이 전 의원은 정치컨설팅회사 CN커뮤니케이션즈를 운영하며 후보자들의 선거비용을 부풀려 4억원 상당의 보전비용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가 2심에서 횡령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이 후보자는 당시 이 전 의원에게 859만9000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형사보상을 결정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관심이 모이는 교권과 학문·표현의 자유에 대한 판결도 눈길을 끈다. 고등학교 수업 중 학생들 앞에서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낸 교사를 징계하는 게 당연하다는 1심 판결을 2015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헌법상 '교수(가르침)의 자유'를 근거로 뒤집었다. 사립여고 교사가 2013년 경제 수업에서 재화의 개념을 설명하다 학생들로부터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달라'는 요구를 받은 뒤 분필을 손가락에 끼워 연기를 내뿜는 흉내를 낸 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확산되면서 문제가 되자 학교 측이 '학교와 동료교사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감봉 2개월의 처분을 내린 사건이다.

이 후보자는 판결문에서 "교수의 내용이나 방법이 부적절하다고 감봉 처분을 하면 '자기검열의 부작용'을 초래해 교수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는 교수의 자유가 포함되고 교수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은 교원의 재량이 어느 정도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대북교류를 정면 중단한 '5·24 조치'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인정, 대북사업 업체에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첫 확정판결을 내린 것도 회자된다. 아동복 제조판매업체 N사가 '5·24 조치'로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 후보자는 "N사가 대북사업에 대한 투자위험을 알고 있었고 '5·24 조치'는 일반 행정과 달리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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