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사진)가 1990년 법관에 임용된 뒤 34년 동안 내놓은 판결문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인권, 사법질서, 대국민 사법서비스에 대한 이 후보자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5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시절 '쉬운 판결문'을 작성하며 화제가 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법원에서는 법조문에 '징역 ○월' 등으로 쓰는 게 관행이었지만 이 후보자는 '○개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법조인이 아니면 '징역 6월'의 의미를 6월 한달 동안 징역형에 처한다거나 6월까지 감옥에 둔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이 후보자는 "법률문장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고 국어문법에도 맞는 쉬운 글이어야 한다"며 국민에게 다가가는 법관의 자세를 중시했다.
201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유죄판결을 내린 것으로 주목받았다. 민중총궐기 집회의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총괄책임자로서 업무상 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판결은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원심 판결대로 확정됐다. 이 판결은 집회·시위 진압에서 국가권력의 책임에 대한 선례를 세우는 한편, 정치적으로도 편향 없는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사회적으로 관심이 모이는 교권과 학문·표현의 자유에 대한 판결도 눈길을 끈다. 고등학교 수업 중 학생들 앞에서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낸 교사를 징계하는 게 당연하다는 1심 판결을 2015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헌법상 '교수(가르침)의 자유'를 근거로 뒤집었다. 사립여고 교사가 2013년 경제 수업에서 재화의 개념을 설명하다 학생들로부터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달라'는 요구를 받은 뒤 분필을 손가락에 끼워 연기를 내뿜는 흉내를 낸 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확산되면서 문제가 되자 학교 측이 '학교와 동료교사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감봉 2개월의 처분을 내린 사건이다.
이 후보자는 판결문에서 "교수의 내용이나 방법이 부적절하다고 감봉 처분을 하면 '자기검열의 부작용'을 초래해 교수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는 교수의 자유가 포함되고 교수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은 교원의 재량이 어느 정도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시각 인기 뉴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대북교류를 정면 중단한 '5·24 조치'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인정, 대북사업 업체에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첫 확정판결을 내린 것도 회자된다. 아동복 제조판매업체 N사가 '5·24 조치'로 피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 후보자는 "N사가 대북사업에 대한 투자위험을 알고 있었고 '5·24 조치'는 일반 행정과 달리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