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만 건드려도 '한미일' 다 상대해야"...'공약' 5문장의 위력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2023.08.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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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8.19.[캠프 데이비드=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8.19.


18일(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역사상 첫 단독 한미일 정상회의의 핵심 메시지는 '한미일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에 담겨 있다.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위협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세 나라가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는 약속이다.

중요성은 문서의 길이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3개의 문서, 즉 협력의 방향성을 제시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 구체적 내용을 서술한 '정신'(공동성명)에 비해 '협의에 대한 공약'은 매우 짧다. 단 두 문단, 다섯 문장으로 공동성명에 비하면 분량이 17분의 1 정도밖에 안 되고 심지어 공동성명에도 이미 담긴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 문서로 굳이 채택했다는 건 그만큼 강조하겠다는 의지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국제사회에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 메시지는 '한미일은 같은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특히 우리 세 정상은 3국 공동의 이해를 위협하는 역내 긴급한 현안이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협의하고 대응하기 위한 소통 채널을 수립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협력 지역도 분야도 확 바뀐다…'한미일 새 시대'
지금까지는 북핵 등 특정 현안에 대해 한미, 한일, 미일 등 주로 양자 간에 소통을 기반으로 협의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3국이 곧바로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지역도 분야도 전방위적으로 확대된다. 한반도는 물론 남중국해와 태평양도서국(태도국)을 포괄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가 우선 대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 세계 안보와 경제에 타격을 주듯이 세 나라의 이익이 걸린 글로벌 현안은 어떤 것이라도 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군사안보뿐만이 아니다. 문서에 표현된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regional challenges, provocations, and threats)은 분야를 한정하지 않는다. 역내외 통상 분규 등 경제적 마찰에 대해서도 세 나라가 즉각적인 대처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과거의 한미일 정상 간 논의와 달라진 가장 큰 성과로 '포괄성'을 꼽았다. 윤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과거에는 개별 현안에 대해서 협력을 모색했다면 3국 협력의 새로운 장은 안보, 경제, 과학기술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해서 3국이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했다는 포괄적인 협력의 장"이라고 밝혔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20일 방송에 출연해 "인태(인도·태평양)지역의 지정학을 바꾼 8시간(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이 진행된 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캠프 데이비드=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3.08.19.[캠프 데이비드=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3.08.19.
결국 국제사회에 한미일 중 한 나라와도 부딪히면 세 나라를 모두 상대해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어떤 국가에 대한 위협이 있을 경우에 이것에 대해서 즉각 협의하기로 공약했다는 것이다. 핫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중 한 국가를 겨냥한 위협이라도 문서에 표현된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affecting our collective interests and security)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대만해협-북한 단거리 전술핵에도 '한미일' 공동 대응
실제 글로벌 안보 현안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 공급망에 교란을 준 것처럼 남중국해에서 무력충돌은 동아시아 안보질서에 혼란을 초래하고 이는 북한의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공동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언급하면서 "그러한 상황은 세계 그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그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대만에 대해서 중국에 어떤 메시지를 제공하는 것이겠느냐. 아시아 국가에 이같은 15만 명의 병력이 다른 국가를 침략했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앞으로는 대만해협에서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등 문제가 생기면 미국,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가 '같은 편'으로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닌 우리나라만을 겨냥한 단거리 전술핵 미사일을 사용하려는 시도에도 미국과 일본이 신속하게 개입해 협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한반도 안보에서 교묘하게 미국과 일본을 한발 밀쳐내려던 북한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캠프 데이비드=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08.19.[캠프 데이비드=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08.19.
'동맹'·'의무'아닌 '약속'
다만 일련의 협의가 '의무'(duty)는 아니다. 말 그대로 '약속'일뿐 국회 비준 등을 거쳐 강제성을 가지는 국가 간 조약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문서에도 명시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어느 한 나라가 '우리나라한테는 이게 위협이 아니니까 세 나라 간에 지금 정보 공유를 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면 (협의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가 한미일 삼각 협력이 즉각적 군사 개입 등의 의무가 부과되는 '3국 동맹'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이유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일본과 군사동맹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여전하고 중국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하는 대만해협 문제 등에 우리가 직접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부담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물론 정권이 교체될 경우 한미일 협력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한미일 협력의 '윈윈 효과'가 분명히 나올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쉽사리 이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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