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이나 불법 무기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개씩 사고 팔리는 게임 계정과 아이템 거래는 이처럼 마약 거래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뤄진다. 아이템이나 계정 거래 자체가 법에 위배되는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에게 콘텐츠의 소유권이 귀속되기에, 허가 받지 않은 거래가 적발될 경우 공들여 키운 캐릭터와 어렵게 얻은 아이템이 순식간에 게임사의 손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
다만 거의 모든 게임사는 계정과 아이템의 현금 거래를 이용약관과 운영정책 조항들로 규제하고 있다. 게임 환경 외부에서의 거래는 게임 내 경제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 게임을 빌미로 한 사기행위가 주로 현금거래에서 발생해 부수적인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계정 및 아이템 현금거래가 적발되면 계정 영구정지와 아이템 회수 등의 조치까지 당할 수 있다. 일부 유저들은 이 같은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불만을 제기한 바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수차례 이러한 약관에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계정거래 사이트 바로템에서 판매 중인 리니지W 계정들. /사진=바로템 캡처
이러한 주장이 법적 타당성을 가지려면 게임 계정과 아이템 등에 대한 '재산권'이 인정돼야 한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대표변호사는 "노점상 자리가 현실적인 가치가 있지만, 재산권으로 인정받지 못하듯 가치와 재산권은 별개의 문제"라며 "게임 계정과 아이템이 지금 시점에서 당장 재산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바라봤다.
음지로 스며든 계정거래, 중개사이트 배만 불렸다
아이템매니아의 메이플스토리 계정 판매글. /사진=아이템매니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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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아니되 적발되면 '게임사의 제재'를 받는 계정거래를 위해 등장한 게 게임거래 전문 사이트들이다. 바로템, 아이렘매니아, 아이템베이 등이다. 이들은 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해 유저들 간 안전거래를 돕고, 유저들이 거래를 위해 입출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로 매출을 올린다. 아이템베이를 운영하는 아이엠아이는 이 같은 수수료를 통해 지난해 460억원 넘는 영업수익을 올렸다.
P2E 게임의 장점 "게임에서 번 돈은 유저에게 귀속"
P2E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 /사진=위메이드
다만 P2E 게임업계는 이 같은 환전이 게임을 통해 '떼돈'을 버는 구조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P2E업계를 선도하는 위메이드 (33,050원 ▼600 -1.78%)의 경우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한다'는 의미의 'P2E'보다는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번다'는 의미의 'P&E'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P2E든 P&E든…금지된 두 나라 '중국과 한국'
불법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장. /사진=뉴시스
특히 한국은 2000년대 중반 도박성 아케이드게임 '바다이야기'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게임 전반에 걸쳐 무거운 규제가 씌워졌다. '게임'이라는 광활한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PC·온라인게임, 콘솔게임, 모바일게임 모두 게임 내 재화의 거래나 현금화가 원천적으로 금지 됐다. 업계에선 과거와 달라진 게임산업의 양상, 도박성 아케이드게임과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차이를 들며 P2E 규제 완화를 요청하지만 여전히 규제당국의 '게임'에 대한 시선은 20여년 전 바다이야기에 머물러있는 게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P2E 게임 기술력을 갖춘 한국 업체들이 게임을 글로벌 출시해도 중국과 한국만 제외하고 선보이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며 "자국 내에서 서비스하지 못하는 게임을 외국에 판매한다는 것은 수출 경쟁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