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우리서 20년 있던 사순이…"얌전히 있었는데, 꼭 죽여야 했나"

머니투데이 박효주 기자 2023.08.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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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의 죽기 전 모습. /사진=뉴스1지난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의 죽기 전 모습. /사진=뉴스1


경북 고령군의 한 사설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사순이'를 포획이 아닌 사살한 데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14일 사순이의 소유주인 목장주의 말을 인용해 "사순이는 새끼 때부터 20여년간 사람 손에 길러져 사람을 잘 따랐다. 별다른 공격성을 보이지 않고 앉아 있었던 사순이가 맹수라는 이유로 별다른 숙고 없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만 했는지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고령임을 감안하더라도 사순이의 몸은 매우 말라 있었다. 그동안 감금돼 살아왔을 사육장 안은 행동 풍부화 도구 등 사순이의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어떤 사물도 없이 시멘트 바닥뿐이었다"며 "탈출 후에 목장 바로 옆의 숲속에 가만히 앉아있던 사순이는 그저 야생 동물답게 흙바닥 위 나무 그늘에 몸을 뉘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더욱이 사순이는 국제멸종위기종 2급인 '판테라 레오'종이었다. 판테라 레오는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북부, 인도 등에 서식하는 사자의 아종으로 개체수는 250마리 미만으로 극소수다.



단체는 "우리나라의 야생생물법에서는 사이테스종 중 포유류 및 조류(앵무새 제외)는 개인의 사육이 불가능하다. 즉 사순이는 그동안 합법적으로 사육할 수 없는 개체여야 했다. 그러나 해당 법령은 2005년에 제정됐다. 2005년 이전부터 사육되던 사순이의 경우 법령을 소급 적용할 수가 없어 지금껏 정책적 사각지대 속에서 개인의 소유로 합법 사육돼 왔다"고 말했다.

이어 "목장주는 전 주인에게서 사순이를 양수한 후 동물원과 관할인 대구지방환경청에 사순이의 거처를 물색해 봤지만 결론은 '갈 곳이 없다'였다. 그 후 환경청의 형식적인 감독하에 개인인 목장주가 지금껏 사순이를 책임져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단체는 "사순이처럼 개인이 불법 혹은 사각지대에서 기르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동물들, 김해 부경동물원의 사자 '바람이'처럼 부적합한 전시시설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 사회는 이런 리스크를 동물들의 고통과 국민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아슬아슬하게 감당하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 /사진=뉴스1지난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목장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 /사진=뉴스1
한편 사순이는 지난 14일 오전 7시 24분쯤 고령군 덕곡면 사설 목장에서 탈출해 목장과 불과 4m가량 떨어진 숲속에서 발견됐다. 당시 사순이는 그늘에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본부는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며 사살을 결정했다. 엽사의 총에 맞은 사순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탈출 1시간 10분 만이었다.


사살된 사순이는 환경시설관리 고령사업소 냉동실에 보관 중이며 사체 처리는 대구지방환경청과 논의 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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