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MBN
더불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왕년의 록 스타들이 자신의 밴드를 거느리고 나와 기존 자작곡을 직접 편곡해 들려주는 방식도 비교적 참신하다. 제작진이 연출했을 밴드 사이 괜한 신경전은 프로그램의 흥행 때문에 부득불 넣었을 전략이었을 테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현장 분위기는 이미 경연이라기보단 잔치에 가깝다. 보는 입장에선 그저 즐기면 그만인 상황에 가까웠다. 다만 섭외된 밴드들의 면면을 보며 나는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우긴 힘들었다. 이들 모두가 정말 "레전드"이고 "다시 타오를" 명분을 가진 팀인가. 내 대답은 '글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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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경연은 시작됐다. 거두절미하고 '불꽃밴드'는 이두헌의 표현대로 "자로 잰 듯한 연주"를 들려주는 기타리스트 이치현과 이철호의 말처럼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을 가진"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대결 장이다. 또한 80년대 민주 세대가 낳은 고독의 가객(전인권)과 90년대 물질적 풍요에 깃든 야생의 로커(박완규)가 충돌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베이시스트와 드러머, 키보디스트들의 현란한 각축은 그 사이를 메우는 훌륭한 볼거리다. 이 글을 쓸 때까진 2화째를 마쳤는데 첫 화에선 출연 밴드끼리 상대평가를 했고 2화에선 관중들이 직접 평가를 했다.
나로선 완전체라 부를 순 없지만 사랑과 평화가 이철호의 노익장을 앞세워 거의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며 선전을 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카를로스 산타나의 영향을 받은 이치현의 초창기 히트곡 '또 만났네’가 들려준 토토, 스틸리 댄 풍 매끈한 리듬도 물론 훌륭했고('또 만났네'는 이치현이 비지스의 가성 화음을 염두에 두고 화장실에서 5분 만에 쓴 곡이다) 듣는 순간 겨울 밤거리가 떠오르는 '사랑의 슬픔'을 기습한 이치현의 플루트 솔로 역시 은은한 백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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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부활의 경우 이승철이 불러야만 완전히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발라드 두 곡을 전혀 다른 성향의 박완규(심지어 김태원도 함께!)가 소화하면서 노래엔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이건 단순히 선곡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박완규는 옛날의 박완규가 아니다. 옥타브 위에서 놀지 못하고 옥타브 아래 눌리는 그의 아슬아슬한 컨디션은 출연자들이 예상했던 곡('Lonely Night')을 박완규가 끝내 부르지 못한 이유처럼 나에겐 보였다. 차라리 세상을 떠난 김재기를 다시 볼 순 없어도 '안녕'의 이성욱은 섭외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이성욱이 부른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Never Ending Story'. 아마 박완규보단 훨씬 근사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방송을 보고 듣는 각자가 연주와 음악을 즐기면 되는 게 불꽃밴드다. 제작진은 시작부터 '서바이벌'을 강조했어도 그건 프로그램의 오락성을 위해 선택한 룰일 뿐, 이치현이 말했듯 이 대진표는 애초에 순위를 매기기 힘든 것이었다. 30~40년 이상 음악만 해온 사람들을 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선 무의미할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런 음악, 이런 밴드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그리고 권인하가 '실용음악' 세대의 안정된 연주 속에 새롭게 담금질한 '나의 꿈을 찾아서'로 시도했듯 그 시대 음악이 지금 시대에도 소통할 수 있으리란 당사자들의 기대와 자신감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타오르게 할 단 하나의 연료는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