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을 만나다 보면 발주사로부터 갑질을 당했거나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지어내거나 부풀린게 아닌가 의심하기엔 너무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들이다. '갑질'의 종류도 다양하다. 납품가를 후려치고 경쟁사에는 납품을 못하게 막는가 하면 자체 할인행사의 부담을 납품업체에 떠넘기고 팔고 남은 재고는 무리하게 반품하기도 한다.
"A마트 B점이 오픈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A마트에 납품하는 기업들의 영업사원들이 B점에 찾아와 자사 제품의 진열을 돕고 있었죠. 다들 일하고 있는데 한 회사 직원만 나갔다 올께요 하고 돌아오지 않더군요. C식품이었습니다. 마트 직원도 아무 말 못하더군요."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갈등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쿠팡은 햇반이 빠진 자리를 중견, 중소기업의 즉석밥이 메우면서 관련 기업들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홍보하기 시작했고 CJ제일제당과 LG생활건강 등은 쿠팡과 경쟁하는 유통 대기업들과 손잡고 할인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햇반의 빈자리를 중소기업 제품이 채웠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좋은건 아니다. 저렴한 중소기업 제품이 있어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끄는 것과 소비자들이 어쩔 수 없이 대체재를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중소기업 제품 판매가 증가했다는 것은 햇반이 없어진 결과일 뿐 그들의 제품이 햇반과 맞설 경쟁력을 갖췄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CJ제일제당이나 LG생활건강도 마찬가지다. 상품을 팔 수 있는 유통채널은 쿠팡 말고도 많지만 그렇다고 쿠팡 같은 막강한 수요처를 잃어서 득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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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한 중견 생활가전기업도 대형 유통회사와 지난해 납품가 갈등을 겪었다고 했다. 잘 팔리는 주력제품의 납품가를 낮춰달라는 요구였는데 거절했다가 거래가 끊겼다. 협상을 통해 주력제품의 납품가는 유지하되 다른 제품의 납품가를 낮추는 것으로 합의했다. 결과적으로 상대적으로 덜 팔리던 제품까지 유통의 힘으로 판매가 늘어나면서 두 회사가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냈다고 했다.
김진형 산업2부장
금쪽이들을 다루는 TV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은 항상 금쪽이 한명에 맞춰져 있지 않다. 금쪽이와 가족,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종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솔루션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화해'다. 다음주 쿠팡과 LG생활건강의 갈등에서 시작해 공정위가 쿠팡에 부과한 과징금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온다. 누가 이기든 그 판결이 '화해'의 시발점이 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