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십만명 찾는 성지 훼손될 뻔…검찰총장과 신부님들 특별한 인연

머니투데이 정경훈 기자 2023.08.1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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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김대건길'이 시작되는 은이성지. 청년 김대건길은 미리내성지까지 이어지는 약 10.3km의 길이다. /사진=뉴시스'청년 김대건길'이 시작되는 은이성지. 청년 김대건길은 미리내성지까지 이어지는 약 10.3km의 길이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중순 특별한 손님이 대검찰청을 찾았다. 천주교 수원교구 이용훈 주교와 이철구 신부였다. 이들을 맞은 이는 바로 이원석 검찰총장. 이 총장과 신부님들의 인연은 2000년대 있었던 '미산 골프장 수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11월 경기 안성에서는 천주교 성지 가운데 하나인 '미리내 성지'를 둘러싸고 천주교계·시민단체와 골프장 개발사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미리내 성지는 1800년대 조선 왕실의 천주교 탄압을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자 국내 최초의 천주교 사제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교인만 연간 수십만명 순례를 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일반 나들이객도 많이 찾는 지역 명소다.



갈등은 A시행사가 미리내 성지에서 2~3㎞ 떨어진 부지를 매입, 골프장 조성을 추진하면서 빚어졌다. 109만㎡ 부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만든다는 계획에 성지가 훼손될 우려가 커지자 천주교 수원교구와 시민단체는 반대 집회를 열었다.

개발 계획은 2003년과 2004년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안성시도 2005년 개발 계획 승인을 반려했다. 하지만 A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안성시를 상대로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이 와중에 A사 관계자들이 골프장 인허가 대가로 안성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수원교구의 제보로 불거졌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8일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소를 찾아 묘비 및 주변 정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8일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소를 찾아 묘비 및 주변 정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원지검 특수부는 2007년 여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당시 사건을 맡은 이가 평검사였던 이 총장이다. 수사 결과 A사 회장 김모씨가 안성시 비서실장을 지낸 조모씨에게 인허가 처리 대가로 3000만원을 건네고 조씨가 이 돈을 시장 측근인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표 이모씨에게 전달한 정황이 드러났다.

다음해 1월 수원지법은 이씨에 대해 제3자 뇌물 혐의로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김씨와 조씨에게는 각각 뇌물공여, 제3자 뇌물취득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선고됐다.

검찰 수사로 비리 의혹이 드러난 데다 A사가 2009년 입목축적(1헥타르 안 나무의 체적)을 허위 조작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당시 27홀 골프장 개발은 무산됐다. A사는 2010년대 중반 새로 허가를 받아 18홀 골프장을 조성했다. 미리내 성지로 이어지는 도로와 사업부지 사이에 500m 이상 거리를 둬 훼손 우려와 순례객의 불편을 해소했다.


수사가 마무리된 뒤 수원교구 신부들은 주임검사였던 이 총장을 찾아 감사를 표하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번 이용훈 주교 등의 방문은 이 총장이 수사 당시 연을 맺었던 이영배 신부를 찾으면서 이뤄졌다. 다만 이 신부는 2021년 선종해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진 않았다. 수원교구에서는 미리내 성지 사건을 언급하며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셨으면 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故 이영배 안토니오 신부. 2021년 1월19일 향년 66세로 선종. /사진=뉴시스故 이영배 안토니오 신부. 2021년 1월19일 향년 66세로 선종.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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