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아냐" 결백해도…모텔 끌고가 고문→억울한 10년 옥살이[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박효주 기자 2023.08.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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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쯤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다방 커피 배달원은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참고인 조사에 불려간 배달원은 자신이 본 것을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이미 그는 살인범이 돼버린 상태였다.

경찰서 아닌 모텔 데려간 경찰…3일간 잠 안 재우고 고문
살인 사건 최초 목격자인 다방 배달원 최모씨(당시 15세)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급기야 경찰은 최씨를 인근 모텔로 데려간 뒤 전화번호부를 던져주며 "진범을 찾아내라"고 강요한다. 이후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폭행을 가했다.

이후 다시 경찰서로 데려간 경찰은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은 채 또 폭행을 가했다. 강압 수사를 견디지 못한 최씨는 결국 자신이 범행했다며 허위 진술을 했고 재판에 넘겨지게 됐다.



결백 주장해봤지만, 되레 꾸지람들은 소년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재판에서 최씨는 "내가 한 일이 아니다", "경찰 폭행에 거짓으로 자백했다"고 호소하며 무고를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최씨가 사건 당시 입은 옷과 신발에서는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 범행에 사용했다는 식칼과 피해 차량 문손잡이, 창문 등에서 최씨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사 기관에서와 달리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꾸짖으며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최씨는 2001년 5월 항소심에서 "감형이라도 받자"는 국선 변호사 말에 결국 있지도 않은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며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경찰 3년 뒤 재수사 진범 찾았지만, 검찰은 불기소
2016년 11월 17일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피의자 김모(38)씨를 경기도 용인에서 체포해 압송하고 있다. /사진=뉴시2016년 11월 17일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피의자 김모(38)씨를 경기도 용인에서 체포해 압송하고 있다. /사진=뉴시
경찰은 사건 발생 3년 뒤인 2003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수사를 개시했다. 같은 해 6월 살인 혐의로 김모(당시 22세)씨와 김씨의 도피를 도운 임모씨를 체포했다.



체포된 김씨는 경찰에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그의 친구로부터는 "사건 당일 친구가 범행에 대해 말했으며 한동안 내 집에서 숨어 지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의 범인이 이미 검거돼 복역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그사이 김씨와 친구 임씨는 진술을 번복했다.

김씨는 이혼한 부모에게 충격과 고통을 줘 재결합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변명했다. 임씨도 주변 사람들에게 김씨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구체적인 물증이 부족하고 사건 관련자의 진술이 바뀐 점 등을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렸고 결국 진범 김씨는 재판 한 번 받지 않고 혐의를 벗었다.

16년 만에 누명 벗은 배달원…16년 만에 잡힌 진범
2016년 11월 17일 오전 광주 법원 앞에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청구인 최모씨(32·가운데)가 무죄를 선고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2016년 11월 17일 오전 광주 법원 앞에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청구인 최모씨(32·가운데)가 무죄를 선고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출소한 최씨는 2013년 경찰의 강압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16년 11월 "최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무죄를 인정했다.

사건 발생 당시 15세의 나이로 구속돼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던 최씨의 누명이 16년 만에 풀린 것이다.



재심 선고 직후 검찰은 2003년 당시 용의자로 지목됐던 김씨를 체포해 구속기소 했다. 김씨는 사건 직후 개명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기소 이후 줄곧 "살인을 한 적이 없고 2003년 경찰 조사 때 인정한 살인 관련 내용은 스스로 꾸민 이야기"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돈을 빼앗기 위해 칼로 살해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이후 항소와 상고를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2018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하며 발생 18년 만에 완전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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