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합판업계에 따르면 선앤엘은 지난 4월30일 합판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다. 1967년 처음 생산했고, 1969년 수출까지 하며 60년 가까이 해온 사업을 접은 것이다. 선앤엘은 2021년 합판으로 매출 576억원을 거뒀었다. 총매출 4563억원의 약 12.4% 수준이었는데 선앤엘은 사업 자체가 "적자였다"고 했다. 지난 3월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리고 "저가 수입 합판의 공세와 시장 점유율 하락, 원가 경쟁력 하락으로 더 이상 합판 생산의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합판은 얇게 자른 나무 판, 업계 용어로 베니어를 여러겹 겹친 자재를 말한다. 가구, 인테리어 자재로도 쓰이지만 60%가량이 공사장 '콘크리트 거푸집'으로 쓰인다. 본격적으로 건물을 올리기 전 제일 밑바닥을 만들 때 콘크리트가 설계대로 굳을 수 있게 모양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거푸집 없이는 웬만한 공사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1950년대 한국전쟁 피해 복구 사업이 시작되고 수요가 크게 늘었다.
1965년 성창기업주식회사 수출용 베니어합판./사진=국가기록원 홈페이지.
수입국 중에는 동남아 국가가 많다. 지난해 기준 수입국 50.3%는 베트남이다. 이어 인도네시아(31.6%), 중국(9.0%), 말레이시아(4.3%) 순이다. 대체로 가격이 국산보다 싸다. 규격이 같은 제품이 국산은 한장당 1만5500원이면 베트남산은 1만2500원이다.
동남아 경쟁사들은 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은 속성수라 부를 정도로 빨리 자라는 고무 나무가 풍성하다. 일부 동남아 지역은 불법 벌목이 성행해 원가를 아끼고 합판을 자체 생산한다고도 전해졌다. 한국은 베트남 활엽수, 뉴질랜드 침엽수 뉴송을 비싼 값에 물류비까지 치르며 들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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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부담도 크다. 합판 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베니어를 지그재그로 겹치는 작업도 사람 손으로 해야 하고, 천연의 결점이라 불리우는 나무의 옹이가 불규칙하게 나오다 보니 자동화에 한계가 있다.
이건산업 생산현장에 합판이 쌓여있는 모습./사진제공=이건산업.
하지만 단속도 약하고 품질검사 신고도 현재로서는 자율이라 건설 현장에서는 일부 합판만 KS인증 제품을 쓰고, 나머지 합판은 비인증 제품을 쓰는 등 꼼수가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판의 수입·생산·유통은 주무 관청이 산림청이다. 국토교통부와 비교하면 건설현장 감시 기능이 현실적으로 약하다고 평가받는다. 한국합판보드협회가 자체적으로 단속하고 산림청이 시정에 나서 공사업자가 저급 합판을 폐기한 사례가 수두룩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베트남산(産)도 KS 인증을 받은 합판은 한장당 1만2500원, 안받은 합판은 6500원이다. 저급 합판으로 만든 거푸집은 내수성과 강도가 약해 시간이 흐르면 변형될 우려가 크다.
한국합판보드협회는 "저급 합판을 써도 제재받지 않으니 저급 합판 시장이 커지는데, 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건설현장 필수재인 합판을 온전히 수입에 의뢰하면 종국에는 건설현장이 '요소수 사태'처럼 수입국에 크게 휘둘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