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에 인수됐던 해운사들, 다시 매물로…'해외로 팔리나' 속탄다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2023.08.04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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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해운사들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 착잡하다. 대어로 꼽히는 매물 중 상당수가 해운업이 침체됐을 때 PEF(사모펀드)에 인수됐다가 해운업 호황기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국내 해운산업, 더 나아가 안보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해운사들이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해운업계는 속을 태우고 있다.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SK해운과 현대LNG해운은 현재 M&A시장에서 새 주인을 찾고 있다. 현대LNG해운은 현대상선 LNG(액화천연가스) 운송사업부가 전신이다. 현대상선 시절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2014년 LNG 관련 사업부를 IMM컨소시엄에 매각했다. LNG 운반 전용선 16척을 보유한 국내 최대 LNG 수송 선사로 LPG(액화석유가스) 운반 전용선 6척도 보유하고 있다.



SK해운은 과거 SK그룹 소유의 해운사였다. 초대형 원유운반선 30척을 가지고 있는 국내 1위 탱커선 사업자다. SK그룹은 2018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 SK해운을 내놨고,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는 1조5000억원을 들여 SK해운 최대주주에 올랐다.

원유와 LNG 둘 모두 국내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핵심 자원이다. 두 회사가 수송하는 자원량도 상당하다. 현대LNG해운은 국내 1위 LNG 수송선사로, 한국 LNG 도입량의 10% 이상을 맡고 있다. SK해운은 국내에 들여오는 원유의 3분의1 이상을 수송하고 있다.



두 회사는 모두 글로벌 공급난으로 인해 운임료가 상승한 뒤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2018년 매출 1조6358억원, 영업이익 733억원을 기록했던 SK해운은 지난해 매출 1조8937억원, 영업이익 2078억원을 기록하면서 영업이익률이 크게 높아졌다. 현대LNG해운도 2015년 매출이 1457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매출이 3981억원으로 늘었다. 인수 이후 최초로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다.

두 회사를 인수했던 PEF는 회사 실적이 나아지고 펀드 운용 기간이 끝나자 본격적인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인수 의사를 표한 것은 해외 선사나 전략적 투자자들이다. 국내 해운사는 두 회사 인수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이 좋아진 만큼 매각가가 높아서다. HMM이 현대LNG상선 인수 의사를 밝혔으나 시장가의 절반 수준의 가격을 제시해 무산되기도 했다.

여기에 해운업이 다운사이클에 진입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1월 5000포인트를 넘어섰던 글로벌 해상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해 들어 1000포인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벌크선 운임 지수 역시 최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두 회사가 해외로 넘어가면 원자재 도입 등에 있어 정부 정책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정책금융을 지원해서라도 국내 사업자가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한해총)는 지난 5월 현대LNG해운의 매각이 본격화하자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해외 매각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해운업이 다운사이클에 접어들었고 두 회사의 몸값이 싸지 않기 때문에 국내 인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해외에 매각되면 자원안보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만큼 국내 회사가 인수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번 PEF 등에 매각되면 수년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에이치라인해운, 폴라리스쉬핑 등 PEF가 껴 있는 다른 해운사들 역시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해운업계는 이들 사례를 들며 HMM 매각에 PEF를 낀 인수는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최대 해운선사인 HMM은 안정적인 경영이 중요한 만큼 재무적 투자자의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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