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 이진우 국장
얼마 전 만난 국내 금융지주의 한 수장은 금융당국의 '은행권 경영·영업관행 제도개선방안'을 비롯한 정부와 시장 안팎의 연이은 정치·정책적 압박(?)에 대해 결이 좀 다른 진단을 내렸다. 아직 갈 길이 먼데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할 수 없는 처지라 난감한 눈치였다.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 구성을 위한 정부의 관심이 관치의 문제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 발언이 여전히 만만찮은 여진을 남기고 있다. 은행장, 금융지주 회장 인선을 둘러싸고 '관치금융 논란'이 거셌지만 금융당국도, 당사자인 금융회사들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5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굳어진 은행권 과점체제를 깨기 위해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을 유도하는 등의 정책이 뒤따르는 것도 결이 같다.
지금도 금융권 안팎에서는 '공공성 강화+경쟁촉진'이란 이상한 조합의 정책을 비롯해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진다. 한 대형 금융지주 회장 인선과정에서 어떤 회장후보가 '경쟁은행의 합병을 통해 초대형 은행을 탄생시키겠다'는 리포트를 제출했는데 회장후보추천위원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는 후일담도 들린다. 현실화하기 쉽진 않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만지작거릴 만한 카드란 얘기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처럼 '신국하우농'(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체제도 언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금산분리 원칙은 언제까지 가져가야 할까. 잘못된 관행을 고쳐 '소비자 권익'을 높이려는 다양한 정책과 시장의 경고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발걸음을 멈추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